[기자의 눈/우경임]국회의 무책임한 ‘플루’ 폭로전

  • 입력 2009년 9월 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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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건복지 담당 기자들은 하루에도 수십 통의 신종 인플루엔자A(H1N1) 자료들을 e메일로 받는다. 검사를 거부당했다는 독자부터 특효약을 개발했다는 회사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정부의 대책을 비판하는 국회의원들의 보도 자료도 쏟아져 들어온다. 그중에는 타당한 비판도 있지만 괜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무책임한 폭로도 많다.

지난달 31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임두성 한나라당 의원은 “군대 내 집단헌혈을 통해 신종 플루 확진환자 2명과 의심환자 14명의 혈액이 17명에게 수혈됐다”는 자료를 냈다. 이에 대해 대다수 전문가는 “신종 플루는 호흡기 감염이 주된 경로여서 발열 등의 증상이 없는 경우라면 혈액을 통한 감염 가능성은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임 의원의 자료가 발표된 후 감기 환자들조차 헌혈을 꺼리고, 대한적십자사에서는 단체헌혈이 무더기로 취소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정작 수혈 받은 17명은 지금까지 아무런 증상을 보이지 않고 있다.

면역증강제를 사용한 백신의 안전성이 우려된다는 유재중 한나라당 의원의 3일 자료도 마찬가지다. 유 의원은 면역증강제를 사용한 백신이 기존 백신보다 부작용 보고 빈도가 높다는 노바티스사의 임상시험 결과를 인용했다. 하지만 문제의 부작용이란 가벼운 발열과 근육통이었다. 심각한 이상반응이 아니었다. 이러한 가벼운 부작용을 우려해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감염으로 인한 치명적인 결과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은 5일 “치료제인 타미플루 비축량이 전 국민의 3% 수준인 161만 명분에 불과해 공백 사태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실제로 의료현장에서 타미플루가 부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부가 지난달 55만 명분의 타미플루를 보급했지만 사용량은 2만∼5만 명분에 불과했다.

최영희 민주당 의원은 신종 플루로 최대 2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 정부 문건을 공개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는 방역 활동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를 가정한 것으로, 문건의 진위를 떠나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

물론 일리 있는 비판도 많았다. 감사원이 2년 전 타미플루 부족 문제를 지적했으나 질병관리본부가 목표 치의 절반밖에 확보하지 못한 점, 전염병 확산을 막겠다면서 관련 예산을 삭감한 점 등을 밝혀낸 것은 의정활동의 결과다. 신종 플루보다 ‘신종 플루 공포증’이 더 심각한 현실이다. 국회의원들의 책임 있는 태도가 어느 때보다 아쉽다.

우경임 교육복지부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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