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결혼과 성’

  • 입력 2009년 8월 31일 02시 59분


性에 대한 금기에 도전하다

◇결혼과 성/버트런드 러셀/간디서원

19세기 초, 공장법이 아동노동을 금지시켰다. 이 법률은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공장 주인들이 반대 목소리를 높였을까? 아니다. 되레 아이의 부모들이 분노에 차 주먹을 치켜들었다. 아이의 품삯은 집안에 짭짤한 수입이 되었기 때문이다. 1870년, 교육법이 실시되자 부모들은 또 한 번 좌절했다. 부모는 자식의 교육비까지 책임져야 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자녀를 안 낳기 시작했다. 낳을수록 부담만 커졌기 때문이다. 자식은 원래 부모에게 ‘가축’과도 같았다. 많으면 많을수록 일손과 수입을 안겨준다는 뜻이다. 가부장제도와 ‘순결’에 대한 생각도 여기서 생겼다. 태어난 아이가 누구 ‘소유’인지 가리려면 아비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가려야 한다. 이에 따라 여성은 여러 남자와 성적인 관계를 맺으면 안 되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결혼과 성’에서 가정과 순결의 의미를 이토록 잔인하게 까밝힌다. 그에 따르면 결혼과 가정의 가치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가정을 통해 얻는 ‘이익’이 없다. 오롯이 육아의 의무만 남은 셈이다. 더구나 아버지의 역할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국가가 이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아이들을 지키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경찰이 안전을 책임진다. 생계도 그렇다. 아주 가난한 경우, 국가는 아버지보다 아이들을 더 잘 챙긴다. 복지국가라면 최소한의 먹을거리와 입성(옷을 속되게 이르는 말)은 갖추어 주지 않는가. 어머니 역할도 마찬가지다. 일하는 어머니들은 갓난아이를 탁아소에 맡긴다. 조금 자라면 자녀는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은 부모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보다 국가가 바라는 바에 대해 훨씬 오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가정, 그리고 이를 지키기 위한 순결과 정조(貞操)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러셀은 “순결과 정조는 사라져야 할 미신”이라고 잘라 말한다. 대부분의 성행위는 이미 자녀를 얻기 위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 애정을 나누고 확인하는 수단으로 쓰일 뿐이다. 그렇다면 성에 대한 윤리도 새롭게 써져야 한다.

미국에서는 한때 술 마시는 일을 법으로 막았다. 그러자 음주는 숱한 불법과 폭력으로 이어졌다. 술은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일단 음주를 ‘나쁜 짓’으로 못 박아버리는 순간 술이 가진 좋은 점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금욕과 정절도 마찬가지다. 성행위를 수치스럽고 더러운 짓으로 여길수록 성(性)이 지닌 아름다움은 자취를 감춘다.

성에 대한 금욕과 절제는 임신에 대한 두려움과 종교적인 믿음에서 비롯된 바 크다. 피임기술은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공포를 누그러뜨렸다. 사람들을 옥죄던 종교의 힘도 약해졌다. 그럼에도 성에 대한 금기는 좀처럼 수그러지지 않는다.

이제는 젊은이들의 성적 욕구를 누르려 하기보다는 제대로 펼치는 법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사고 싶은 집을 둘러보지도 못한 채 덜컥 계약부터 할 수는 없다. 성과 결혼도 그렇다. 진정 사랑해서 상대방과 맺어지고 싶다면 서로를 알기 위한 과정으로 성이 필요할 수 있는 것. 성의 가치를 제대로 알 때 음란물은 되레 자취를 감출 터다. 성이란 본래 둘이 온전히 하나 되어 자식이라는 사랑의 결과물을 만드는 일 아니던가.

‘결혼과 성’은 1929년에 나왔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에서는 피아노 다리에조차 ‘음란하다’는 이유로 옷을 입혔다. 그만큼 당시 독자들은 이 책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러셀의 주장이 상식처럼 다가온다. 그럼에도 한 세기 전에 러셀이 했던 고민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출산율은 점점 떨어지고 가정은 무너지고 있다. 이를 막아줄 새로운 성윤리는 무엇일까?

▶지난 기사와 자세한 설명은 easynonsul.com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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