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사업 반대하려 단체장 소환…“청구사유 법으로 제한을”

  • 입력 2009년 8월 28일 03시 00분


■ 하남 이어 제주도 투표율 미달로 부결… 주민소환제 해법 없나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던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이 투표율 미달로 무산되자 주민소환제도에 대한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기 하남시에서도 광역화장장 건설을 추진하던 김황식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이 추진된 바 있어 국책사업과 관련해 지방자치단체장을 소환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주민소환법)’은 2006년 5월 제정돼 2007년 5월부터 시행돼 왔다.》

결과 승복안해 갈등 장기화
‘주민의 권리보장’ 취지 퇴색
“부결 책임 물어 남용 막아야”

○소환 사유 명시 안된 규정

주민소환법은 소환 절차를 자세히 규정하면서도 소환 사유는 명시하지 않고 있다. 지자체장에 대한 주민들의 견제수단인 주민소환을 폭넓게 인정하는 입법 취지가 반영된 결과다. 이 때문에 현행법상 지자체장을 소환하는 사유에는 제한이 없다. 이번 제주지사 소환운동에서처럼 국책 사업을 수행하려던 단체장에 대해서도 주민소환이 가능하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홍준형 교수는 “주민소환은 지자체장을 주민이 직접 견제하는 좋은 수단이지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소환 사유를 명확히 밝혀주는 것이 보완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정부패나 무능 등이 소환사유가 될 수는 있으나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를 반대하기 위해 소환을 추진하는 것은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비용을 낭비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 최소한 정책 추진 과정이 소환 사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홍 교수는 현실성 없는 주민소환법 규정도 함께 보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권자 3분의 1이 투표에 참여해 과반수가 찬성해야 한다는 현행 규정은 현실 투표참여도를 고려하면 지나치게 높아 주민소환제도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며 “소환사유는 명확히 하되 투표율이 낮은 현실에 맞게 소환 기준을 낮춰야 실효성 있는 제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소환에 따른 책임도 뒤따라야

주민이나 단체가 지자체장 소환을 추진하다 부결됐을 때는 이에 맞는 사회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유야 어쨌든 단체장을 소환하겠다고 나서면 지역 내 갈등이 커지고 투표실시에 따른 사회적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부결에 따른 구체적 책임의 범위를 현행법에 추가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최소한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견해다. 주민소환 대상이 된 지자체장은 주민소환 추진만으로도 정치적인 타격을 입게 되지만 부결 이후 추진 주체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는 것.

하남이나 제주처럼 부결 이후에도 주민소환을 추진하던 측에서는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계속 소환운동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아 장기간 지역 내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법규정 보완이 아닌 주민의식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경희대 행정학과 강제상 교수는 “주민소환은 단체장을 견제하는 확실하고 강력한 방안인 만큼 함부로 이 제도를 제한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며 “주민 스스로 주민소환 남용에 따른 부작용이 얼마나 위험한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도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법규 정비보다는 주민소환이 더 진행되면서 장점과 단점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주민소환에 따른 이익과 부작용 중 어느 쪽이 컸는지 스스로 인식하면 자연스럽게 제도 보완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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