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가도 못하는 편지’ 작년 1176만 통

  • 입력 2009년 8월 13일 02시 59분


주소 잘못 쓰거나 이사로 반환못하는 우편물 급증… 석달 후 폐기

6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관악우체국. 정윤주 운용팀장이 주소 불명으로 배달되지 못한 등기 우편물을 뜯어 보고 있었다. 발송인 주소도 분명하지 않아 연락처라도 적혀 있는지 보기 위해서다. 속도위반 통지서가 들어 있었다.

차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대리운전 회사에 보낸 우편물로, 통지서 한쪽에는 과속이 대리운전사의 과실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다행히 보낸 사람의 휴대전화번호가 있어 정 팀장은 메모를 한다.

하지만 우체국이라며 전화를 하면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그냥 끊어버리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관악우체국에만 주인을 찾기 힘든 이런 우편물이 하루에 1000통 정도 쌓인다.

수취인이 찾아가지 않거나, 발신인 표기가 제대로 안된 ‘주인 없는’ 우편물이 크게 늘고 있다. 2004년부터 5년간 연평균 60.7%가 늘면서 2008년에는 1000만 통을 넘어섰다.

● 서로 안 받으려는 사연들

최근 보낸 사람을 알 수 없는 한 편지가 A백화점 편지함에 들어 있었다. 7만 원 상당의 스커트를 훔쳐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백화점에서는 이 편지 받는 것을 거절했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결국 이 우편물은 3개월 동안 광화문우체국에 보관됐다가 오갈 데 없는 다른 우편물들과 함께 폐기됐다.

반환 불능 편지가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잦은 이사와 잘못된 주소 표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무 관계나 전세 관련 내용증명, 온라인 쇼핑몰에서 샀거나 환불하려는 물건 등을 서로 받지 않으려는 세태도 한몫한다. 발송인과 수취인이 ‘숨바꼭질’하면서 우편물이 길을 잃는 셈이다.

4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광화문우체국의 한 창고에는 주인 없는 우편물들이 날짜별로 빼곡히 정리돼 있었다. 대부분의 우편물은 공과금 고지서, 독촉장, 범칙금 통보서였다. 5월분에는 당시 일괄적으로 배달된 노란색 재산세 고지서가 눈에 많이 띈다. 백화점상품권과 50만 원권 수표 등이 들어 있는 우편물은 별도의 잠금장치가 설치된 곳에 보관돼 있었다. 이것 역시 수취인이 분명하지 않은 우편물이었다.

우체국 관계자는 “수취인이 분명하지 않은 우편물은 관할 우체국에서 책임자 입회 아래 개봉한 후 주인을 찾는 노력을 한다”며 “그래도 못 찾으면 별도의 창고에 3개월까지 보관했다가 폐기한다”고 밝혔다.

● 7월에만 서울서 폐기된 우편물이 9t

주인 없는 소포도 우체국의 골칫거리다. 관악우체국에서는 1년에 한 번꼴로 주인 잃은 소포를 경매에 부친다고 한다. 하지만 쓸 만한 물건은 별로 없다. 경매 담당자가 직원들에게 사달라고 부탁할 정도라는 것. 지난해 이 우체국에서 이뤄진 경매에서는 50개의 물품 중 소주, 옷, 카메라렌즈 등 19가지가 팔렸다. 폐기 처분된 31개 소포 중에는 콘돔, 담배, 산삼주, 과자 등이 눈에 띈다.

서울 지역의 주인 없는 우편물은 3개월 보관된 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 동서울우편집중국에 모인다. 매월 마지막 주에 종이 재활용업체에 kg당 40원에 팔려 재활용된다. 지난달 서울에서 폐기된 우편물은 9170kg에 이른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런 주인 없는 편지를 관리하는 데 드는 인건비만 연간 3억5000만 원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임동현 인턴기자 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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