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손님인줄 알았다, 가짜 한우를 내놓았다

  • 입력 2009년 8월 7일 02시 59분


지난달 21일 서울시 주호제 팀장(왼쪽)과 최임용 주임이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있는 한 고깃집에서 한우 여부를 판정하기 위해 고기 한 점을 수거전용 봉투에 담고 있다. 이날 두 사람은 신분을 숨긴 채 식당을 찾았다. 김지현 기자
지난달 21일 서울시 주호제 팀장(왼쪽)과 최임용 주임이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있는 한 고깃집에서 한우 여부를 판정하기 위해 고기 한 점을 수거전용 봉투에 담고 있다. 이날 두 사람은 신분을 숨긴 채 식당을 찾았다. 김지현 기자
■ 서울시 ‘미스터리 쇼퍼’ 암행단속 현장 동행 취재
일반 소비자처럼 위장, 한우 주문후 절반 시식, 남은 고기 수거해 검사
“수사권 없어 반발땐 난감”82곳 조사 3곳 적발

“자, 오늘 저녁 회식 때는 뭘 먹을까?”

“아이 참, 점심 먹으러 왔으면 점심 메뉴부터 고르시죠.”

“그래, 좋다. 오늘 점심은 내가 등심으로 쏜다! 저녁에는 김 과장이 쏴라.”

반소매 와이셔츠를 입은 40대 남성 2명과 수수한 정장 차림의 여성이 여느 직장인들처럼 메뉴판을 앞에 놓고 가벼운 수다를 떤다. “한우가 틀림없느냐”는 질문에 종업원은 “확실하다”는 대답과 함께 빙긋이 웃으며 주문표에 등심 2인분, 차돌박이 1인분을 적었다.

손님으로 나타난 일행은 가짜 한우판매점 사이에서는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시 원산지관리팀 공무원과 소비자단체 회원. 이들은 신분을 숨기고 일반 소비자인 것처럼 행동하며 암행 단속을 벌이는 ‘미스터리 쇼퍼(Mistery Shopper)’다.

○ 탤런트 뺨치는 연기

서울시 원산지관리과 주호제 팀장(46)과 최임용 주임(47), 정모 명예시민감시원(43·여) 등 3명은 지난달 21일 점심시간 서울 강동구의 한 한우 전문 음식점에 들어섰다. 보통 직장인들처럼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고, 한우를 주문하는 모습은 최소한 대역 연기자 수준은 되는 듯했다. 종업원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옆 테이블의 고기를 살펴보며 “색이 맑지 않고 좀 흐릿한 게 의심이 간다”거나 “마블링 모양을 보면 한우일 것 같기도 하다”는 등의 대화를 나직한 목소리로 주고받기도 했다.

주문한 지 5분 뒤 ‘한우 고기’가 나오자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서둘러 불판에 구워 맛있게 먹었다. 그러면서도 고기 절반은 접시에 남겨두었다. 익은 고기를 맛보고 남은 고기의 색과 육질을 자세히 관찰한 뒤에야 주인을 호출했다. 한우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감이 왔기 때문이다. 단속반일 줄은 아무도 몰랐지만 주 팀장은 주머니에서 마패를 꺼내듯 서울시 공무원증을 꺼내 제시한 뒤 남은 고기를 수거용 밀봉 비닐봉투에 담았다. 주인의 확인 서명까지 받은 뒤에야 점검이 끝났다. 여기서 수거된 고기는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으로 보내져 유전자검사를 통해 수거 보름여 만인 6일 진짜 한우로 판정받았다.

업소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가격표에 붙어 있는 대로 음식값을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주 팀장은 “가짜를 판매하는 음식점에서도 단속반이 나올 것에 대비해 진짜 한우를 일부 가져다 놓고 단속할 때만 내놓는 경우가 있다”며 “이렇게 신분을 감추고 ‘미스터리 쇼퍼’ 방식으로 단속해야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 오리발, 막무가내 등 다양한 저항

서울시는 지난달 13일부터 21일까지 처음으로 ‘미스터리 쇼퍼’ 방식으로 단속을 벌였다. 21일 단속 현장에서는 주인이 “한우가 틀림없으니 자신 있다”며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검사 결과도 한우인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보통은 “종업원이 실수로 고기를 잘못 가져왔다”고 둘러대거나 “당신이 뭔데 나를 속이고 고기를 가져가느냐”며 막무가내로 항의하기도 한다. 단속원들은 비싼 고기를 먹어보는 일 덕분에 입은 ‘호사’를 하지만 강제수사권이 없어 주인들이 반발하면 난감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최 주임은 “오리발형은 한우 전문이라면서 육우나 수입 고기를 가져다 놓는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면 꼬리를 내린다”고 말했다. 도축장에서 수의사가 발급하는 등급판정서와 도축검사증명서에 적혀 있는 개체식별번호가 일치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단속된다고 지적하면 막무가내형도 이내 저항을 포기한다고 한다.

단속만 하는 것은 아니다. 등급판정서는 손님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걸어야 하는데 가장 최근에 들어온 고기의 등급을 게시해야 한다는 점을 업주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이들의 임무다. 서울시는 이번 단속 기간에 한우 전문 음식점 82곳을 점검해 한우가 아닌 고기를 판매한 강남구 역삼동과 서초구 반포동의 음식점 2곳과 원산지를 허위로 표기한 송파구 신천동의 음식점 1곳을 적발했다. 이들 음식점에는 영업정지와 고발 등의 조치를 할 예정이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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