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야학선생님이 검찰총장 됐네요”

  • 입력 2009년 7월 31일 02시 59분


金 내정자, 대학시절 신정동 공터에서 야학교사 활동
당시 야학 학생이던 이공재 변호사와 ‘30년 인연’ 화제

1976년 봄 서울 강서구 신정동(현 양천구 신정동)의 한 공터. 낡은 군용천막으로 만든 야학 교실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 20여 명이 대학생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있었다.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을 다니며 야학에서 꿈을 키웠던 한 소년은 20여 년 뒤 어엿한 변호사가 됐다. 그가 닮고 싶어 한 야학 선생님은 28일 검찰총장에 내정됐다.

김준규 검찰총장 내정자가 대학시절 교사로 활동했던 야학에서 공부한 변호사와의 인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이공재 변호사(49·사법시험 39회·사진)는 1973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 친구들이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는 자동차정비공장, 의자공장 등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나 배움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1976년 3월 집 근처 공터에 꾸려진 야학 ‘신정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 야학은 1971년 김민기 극단 학전 대표와 이도성 전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등이 주도해 만들었다. 채정석 법무법인 렉스 대표, 이상준 골든브릿지금융그룹 회장, 이인용 삼성전자 부사장 등이 야학 교사로 활동했다.

이름만 학원일 뿐 공터에 세워진 천막 3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 변호사는 매일 저녁 일을 마치고 나면 야학에 들러 밤늦게까지 공부에 몰두했고 6개월 만에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듬해 공고에 입학했지만 학비가 없어 진학을 포기했다. 다시 자전거공장에 다니며 틈틈이 공부한 끝에 2년 뒤 대입검정고시를 통과했고 1983년에는 서울대 법학과에 합격했다. 1997년에는 사시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다.

야학에서 반이 달라 직접 배우지는 않았지만 김 내정자는 수업이 끝난 뒤 그와 마주치면 “항상 희망을 잃지 말라”며 용기를 줬다. 또 이 변호사가 어려움을 딛고 서울대에 들어가 ‘동문 후배’가 되자 자신이 근무하던 검찰청으로 불러 향후 진로에 대해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야학에 들어간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 됐다”며 “야학에서 만난 선생님들을 통해 처음으로 삶이 따뜻하고 희망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김 내정자가 말이 많지는 않지만 속마음이 따뜻한 분”이라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야학에서 느꼈던 고마움을 사회에 되돌려주는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난민 어린이를 돕기 위해 매달 후원금을 내고 두 달에 한 번씩 무료 법률상담에 나선다. 최근에는 동아일보와 서울지방변호사회, 서울시교육청이 함께하는 ‘변호사님과 친구됐어요’ 캠페인에도 참여해 어려운 학생들을 후원하고 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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