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일 공들인 러 환자유치 ‘의료 한류’ 새 루트 뚫었다

  • 입력 2009년 6월 19일 02시 56분


■ 러 40대 사업가, 싱가포르서 실패한 수술 한국서 재수술 위해 21일 입국

국내의료수준 아직 저평가… 의료관광산업 발전 위해선 범정부적 협력체제 갖춰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는 사업가 호멘코 니콜라이 씨(47)가 세브란스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기 위해 21일 입국한다. 23일을 전후해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한국과 러시아뿐 아니라 싱가포르도 이 수술을 주목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내로라하는 병원에서 받은 첫 수술 결과가 좋지 않아 한국에서 재수술을 하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씨는 정관계 네트워크가 탄탄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번 수술이 성공하면 극동 러시아 지역에 ‘의료 한류’ 바람을 일으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130여 일이 걸렸다.

2월 9일 해외 환자 유치업체인 닥스투어 우봉식 대표(재활의학과 전문의)에게 한 통의 e메일이 날아들었다. 호멘코 니콜라이라는 러시아인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우 대표는 즉각 국내 대형 병원 세 곳과 접촉했다. 2개 병원은 담당부서를 놓고 혼선을 빚었다. 세브란스병원은 검사비와 수술비를 합쳐 약 2만 달러(2600만 원)가 소요될 것이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니콜라이 씨는 비용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더니 “의료 수준이 높은 싱가포르로 가겠다”는 e메일을 보내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연간 2500여 명이 해외에서 진료를 받는다. 이 가운데 80%는 싱가포르로 간다. 니콜라이 씨도 싱가포르와 한국을 놓고 저울질하다 싱가포르를 선택한 것이다.

우 대표는 즉각 블라디보스토크로 날아갔다. 4월 6일 우 대표는 니콜라이 씨를 만나 “한국 의료기술이 싱가포르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니콜라이 씨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

5월 초 뜻하지 않은 소식이 찾아왔다. 한국에서 재수술이 가능한지를 묻는 니콜라이 씨의 e메일이었다. 4월 중순 싱가포르에 있는 마운트 엘리자베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

우 대표는 다시 바빠졌다. 이때부터 니콜라이 씨와 30회 이상 e메일을 주고받았다. 국제전화도 수십 차례 했다. 5월 17일 우 대표는 니콜라이 씨를 다시 만나기 위해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한 극동러시아 의료관광설명회에 참가했다. 이번에는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들도 함께했다.

우 대표와 세브란스병원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니콜라이 씨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진료비 세부 명세와 수술 방법을 구체적으로 밝힐 것을 요구했다. 아직까지 한국 의료 수준을 크게 신뢰하지 않았던 것. 요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이 자신을 수술했던 싱가포르 의사로부터 ‘지도’를 받고 수술에 임해야 한다는 주문도 덧붙였다. 진료비도 깎아 달라고 했다.

우 대표와 세브란스병원은 니콜라이 씨의 과도한 요구를 들어주면서까지 국내로 데려와 수술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싱가포르의 내로라하는 병원에서 실패한 수술을 한국 병원이 성공한다면 홍보 효과는 클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우 대표와 세브란스병원은 정공법을 택했다. 니콜라이 씨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면 나중에 다른 해외 환자들이 여러 엉뚱한 요구를 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부드럽지만 강하게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국제적인 인지도를 따지더라도 세브란스병원이 마운트 엘리자베스 병원보다 앞서며 의료진도 월등하다는 점을 재차 설명했다. 다만 진료비는 일정 수준 할인해 주기로 했다. 이달 초 니콜라이 씨에게서 답신이 왔다. “한국에서 수술을 받겠습니다.”

니콜라이 씨의 한국행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명해졌다. 21일 현지 방송국 취재팀이 그와 함께 입국한다. 수술 과정을 취재해 방송할 예정이다.

우 대표는 “130여 일에 걸친 환자 유치 스토리를 뒤집어보면 아직까지 국내 의료 수준이 외국에서는 매우 저평가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범정부적인 지원과 협력 체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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