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와 용서’ 37년 앙금 풀다

  • 입력 2009년 6월 10일 02시 51분


9일 오후 전북 군산시 옥도면 개야도초등학교에서 1970년대 간첩사건에 연루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납북귀환 어부 박춘환 씨(왼쪽)와 친구 임봉택 씨가 37년 만에 다시 만나 끌어안으며 화해를 하고 있다. 군산=연합뉴스
9일 오후 전북 군산시 옥도면 개야도초등학교에서 1970년대 간첩사건에 연루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납북귀환 어부 박춘환 씨(왼쪽)와 친구 임봉택 씨가 37년 만에 다시 만나 끌어안으며 화해를 하고 있다. 군산=연합뉴스
“고문 못이겨 거짓 자백… 친구야 미안하다”
“오죽 했으면 그랬겠나… 여생 함께 보내자”
군산 개야도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 사건 연루 두사람 ‘눈물의 화해’

“친구야 미안하다. 제발 용서해다오.”

“그때는 정말 죽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너도 얼마나 고문을 당했으면 있지도 않은 사실을 불었겠느냐. 이제 다 이해한다.”

9일 오후 2시 전북 군산시 옥도면 개야도리 개야도초등학교 운동장. 37년 만에 60대 노인이 돼 다시 만난 두 친구는 한참 동안 껴안은 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군산 앞바다 섬인 고향 개야도에서 고기를 잡으며 평온하게 살던 임봉택 씨(62)가 같은 마을에서 함께 자란 친구 박춘환 씨(63)와 ‘철천지원수’가 된 것은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던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8년 연평도 근해에서 조기잡이 배(영창호)를 타고 조업하던 중 납북됐다가 귀환한 박 씨가 간첩 혐의로 구속되면서부터다.

당시 서해에 형성되는 조기떼를 따라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 조업을 하다 북한에 납치돼 수일에서 수개월 동안 억류됐다가 돌아온 어민들이 간첩으로 둔갑해 처벌받는 일이 빈발했다. 당시 수사기관은 간첩혐의를 입증할 단서가 마땅치 않자 마을 주민들을 마구 잡아 들여 이웃이 간첩이라는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

귀환어부들은 간첩으로 몰려 집안이 파산하고 출소 후에도 평생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이들이 간첩활동을 했다고 허위 진술한 주민들은 ‘밀고자’라는 멍에를 써야 했다. 경찰의 지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한 박 씨도 “친구 임 씨에게 북에서 가져온 책을 건넸고 북한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거짓 자백했다.

임 씨는 영문도 모르고 경찰에 끌려가 두 달 가까이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수없이 당했고 결국 ‘박 씨가 북한의 첩자임을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혐의(불고지죄)로 구속됐다. 박 씨는 7년을 복역한 뒤 출소했지만 아예 고향을 떠났고 임 씨는 8개월 만에 풀려났지만, 두 사람은 이후 37년 동안 서로 연락을 끊은 채 살아왔다.

서로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두 사람은 9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주관으로 고향인 개야도에서 상봉해 그간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화해했다. 두 사람은 4월 20일 진실화해위의 조사로 누명을 벗었고 정부를 상대로 재심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

박 씨는 “나의 허위진술로 친구의 인생이 망가진 것을 알고 자살도 여러 차례 생각했었다”며 “출소 후 분노와 원한을 안은 채 고향을 떠나 살아왔지만 남은 인생은 친구에게 속죄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임 씨는 “세월이 흐르다 보니 서운한 감정도 많이 사그라졌다.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가 여생을 함께 보내고 싶다”면서 눈물을 훔치며 웃었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각각 법원의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개야도 출신의 납북귀환 어부 서창덕 씨와 정삼근 씨도 이날 행사에 참석했지만 ‘거짓 증언자’와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군산 개야도=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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