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법질서 확립” vs 노동계 “파업권 침해”

  • 입력 2009년 6월 9일 02시 54분


기준 9가지로 늘려… 합법파업때도 경찰 배치 가능

■ 공권력 투입 ‘내부지침’ 변경

경찰청이 최근 마련한 ‘노사분규 관련 경찰력 운용 개편방안’은 노사분규 현장에서 불법행위가 예상될 경우 공권력을 바로 투입할 수 있도록 해 불법 행위를 미리 막자는 내용이 핵심이다. 또 실제 불법이 이뤄진 뒤에는 신속하게 대응하겠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공권력 투입 기준을 완화해 노동현장에서 불법이 기승을 부리는 것을 선제적이고 신속한 공권력 투입으로 미연에 막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의 ‘노사분규 대응방안’은 △경찰력 투입 기준 △경찰력 행사 원칙 △경찰력 투입 절차 △분규 유형별 대응 방안 등을 담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부 손질하기는 했지만 방안 전체를 개편한 것은 공권력 투입 기준이 마련된 1990년 3월 이후 약 19년 만에 처음이다.

합법 파업에도 경찰력 배치 가능

경찰은 노사분규 발생 때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할 수 있는 경우인 ‘경찰력 투입 기준’을 기존 5가지에서 9가지로 늘렸다. 노사분규 현장에서 불법행위가 벌어진 뒤에야 공권력을 투입하는 사후대응 방식에서 벗어나 불법행위가 예상될 경우 먼저 공권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한 것이다. 또 그동안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거나 너무 포괄적이어서 일선 경찰들이 파업현장에서 대응지침을 집행하는 데 미진했던 부분도 이번에 고쳤다. 경찰은 회사 측이 직장폐쇄와 함께 시설보호를 요청한 경우 사실상의 공권력 투입 요청으로 해석해왔으나 실제 근거 조항은 없었다. 이번 개편엔 이 부분이 반영됐다.

파업의 불법 여부와 불법행위의 수위에 따라 구분한 노사분규 유형별 대응방안도 더 구체화했다. 당초 경찰은 합법 파업의 경우 노사 자율해결 원칙을 내세워 정부의 직접 개입은 피했다. 하지만 새 방안은 합법 파업이라도 노사충돌 등 불법행위가 발생할 경우 신고를 받아 경찰이 현장에 출동할 수 있도록 했다.

노동계 “파업권 침해” 반발

불법파업 대응방안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3월 노동부에서 노동관계장관회의 때 보고했던 내용보다 더 강화했다.

근로자가 작업을 거부하는 불법 파업의 경우 그동안 경찰은 ‘법적 책임을 알리고 파업을 풀도록 설득한다’는 소극적인 대처에 그쳤다. 하지만 앞으로는 파업 주동자를 회사 측 고소를 받아 신속히 사법조치하고 노사가 충돌할 땐 경찰이 현장 출동해 체포하도록 했다. 병원 수도 전기 등 필수공익사업장에서 불법 파업을 할 경우 종전엔 주동자에 한해 법적 책임을 물었던 것과는 달리 파업 참여자에 대해서도 회사 측 고소를 받아 빨리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경찰의 ‘노사분규 대응방안’ 개편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산업현장에서 법질서 확립을 강조해왔지만 실제 파업현장에서 경찰의 효과적인 대응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노조의 정당한 파업권에 대한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 이승철 대변인은 “불법행위가 발생하기도 전에 경찰 판단에 따라 경찰력을 사용할 경우 헌법에서 정한 기본권인 파업권이 크게 침해될 수 있다”면서 “경찰의 방침이 바뀐 게 사실이라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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