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자녀 적성 ‘착각의 유혹’

  • 입력 2009년 6월 9일 02시 54분


수학-과학 좋아하니
보나마나 의사가 맞다?

집에서 말이 적은 걸 보니
틀림없이 내향적?

《대학입시에 입학사정관제가 본격 도입되면서 희망하는 대학 전공에 맞는 비교과 활동을 꾸준히 한 학생일수록 대학 진학에 더욱 유리해졌다. 고등학교 입시에서는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에 따라 특목고, 자율형 사립고, 기숙형 공립고, 마이스터고 등 다양한 학교 선택권이 주어지게 됐다. 이런 입시 변화 때문에 학부모에겐 새로운 임무가 생겼다. 자녀의 적성을 초·중학교 때 일찌감치 발견해서 키워주는 ‘적성 로드맵’을 짜주는 것이 그것이다.》

적성 로드맵은 자녀의 적성을 조기 발견해 장차 취업 이후까지 인생 지도를 그리는 작업. 자녀의 적성을 알고 진로 계획을 세우면 목표의식이 생겨 스스로 공부하게 되고, 장래에 특정 분야에서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대학생이나 직장인이 되어 뒤늦게 진로를 바꾸는 데 드는 시간, 노력, 비용도 줄인다.

자녀의 적성, 어떻게 꿰뚫어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적성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인 흥미(내가 좋아하는 것), 성격(내게 잘 맞는 것), 능력(내가 잘하는 것)을 종합해서 판단하라고 조언한다. 이들 중 하나 이상을 과소 혹은 과대평가하면 자녀의 적성을 잘못 진단하게 된다는 것. 진로컨설팅 전문업체인 와이즈멘토를 통해 학부모가 자녀의 적성을 잘못 진단하는 대표적인 사례 세 가지를 살펴보자.

[1] 흥미를 잘못 진단한 경우: ‘수학, 과학을 좋아하니 의사가 좋겠다’

고등학교 2학년인 김모 군은 수학, 과학을 좋아해서 자연계를 선택했다. 김 군이 이들 과목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이든 인과관계가 분명하고 답이 딱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수학 응용문제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풀어보거나 물리를 분석하며 공부하기를 좋아한다. 한편 생물은 싫어한다. 워낙 깔끔한 성격이라 생체 해부를 좋아하지 않는 데다 암기해야 할 것이 많아서다.

[부모가 판단한 적성]

김 군의 부모는 최상위권인 데다 과학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어려서부터 의사가 될 것을 권했다. 김 군도 싫지 않았다. 돈을 잘 벌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사가 자신에게 잘 맞을지, 아닐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실제 자녀의 적성]

의사에 적합하려면 과학 과목 중 생물을 가장 흥미롭게 생각해야 한다. 생물을 싫어하는 김 군은 의사란 직업에 맞지 않다. 대신 김 군은 수리능력, 논리능력이 높고 창의적이기에 이런 능력을 적용할 수 있는 애널리스트나 경영 컨설턴트가 어울린다. 남에게 호감을 주는 인상에 똑똑 떨어지는 조리 있는 말투도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이들 직업에 맞다. 그래도 꼭 의사가 되고 싶다면 연구 분야가 좋겠다는 진단이었다.

[2] 성격을 잘못 진단한 경우: ‘집에서 말이 없는 걸 보니 내향적이구나’

중학교 3학년인 이모 군. 집에선 주로 책을 읽고 부모와는 별반 대화가 없다. 반면 학교나 학원에서는 대인관계가 넓고 활발하다. 평소 말이 많지는 않지만 자신의 의견을 밝혀야 할 상황이면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부모가 판단한 적성]

이 군의 부모는 아들의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만 보고 내향적인 아이라고 판단했다. 독서를 좋아하는 아들이 연구원이나 작가처럼 비교적 혼자서 몰입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 자녀의 적성]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가 말을 안 하고 무엇에든 시큰둥한 자세를 보이면 조용한 성격이라고 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 보이는 성격이 자녀의 성격이라고 믿어버린다. 그러나 밖에서의 자녀는 다를 수 있다. 이 군은 오히려 글 쓰는 것보다 말하는 게 더 편하고 좋은 외향적 성격이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이 군에게는 작가나 연구원이 맞지 않는다. 외국어고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성적도 상위권이고 영어를 잘 하며 말도 논리적으로 할 줄 알기 때문에 광고기획자나 변호사 같은 직업이 어울린다.

[3] 능력을 잘못 진단한 경우: ‘어렸을 때 똑똑했으니 공부 쪽으로 밀어야지’

고등학교 2학년인 박모 양은 중학교 때까지는 최상위권이었으나 고등학교 진학 후 성적이 점점 떨어져 현재 중상위권이다. 박 양은 어렸을 때 미술에도 재능이 있었지만 부모가 예체능 방면 진로를 반대하는 바람에 미술을 취미로만 한다. 그러나 요즘처럼 성적이 오르지 않을 때는 종종 ‘미술을 다시 해볼까’라는 유혹을 느낀다.

[부모가 판단한 적성]

박 양의 부모는 상담을 할 때 “얘가 어렸을 때는 머리가 좋았는데…”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기본적으로 학습능력이 있기 때문에 조금만 더 노력하면 성적을 올려서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실제 자녀의 적성]

박 양은 실제 검사에서도 아이큐(지능지수)가 높았다. 특히 공간 지각력이 뛰어났다. 이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은 대개 두뇌회전이 빨라 머리가 좋아 보인다. 이런 학생 중에는 중학교 때까지 공부를 잘 하다가 고등학교 때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많다. 머리만 믿고 공부를 안 해서 공부습관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학생의 전체 능력을 100%로 봤을 때 현재 박 양은 학업능력 70%, 미술능력 30%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100%의 학업능력을 가진 최상위권이나 100%의 미술능력을 가진 학생과는 대입 전략이 달라야 한다. 모의고사 성적이 계속 3, 4등급이라면 지금이라도 미술 실기를 병행해야 한다. 학업능력을 기본으로 하되, 미술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 문화 관련 공사나 기업의 홍보 담당자로 일하는 것이 좋다.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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