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어느날 문득 ‘낯선 나’… 변신

  • 입력 2009년 6월 8일 02시 50분


팍팍한 삶→ 소외 고독→ 어느날 문득 ‘낯선 나’
◇변신/프란츠 카프카/문학동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몇 해 전, 유행하던 광고 카피다. 여행이 육체를 해방시키듯, 궤도만 따라가던 정신도 상상을 통해 자유로움을 느낀다. 문학이나 영화는 일상의 갑옷을 벗게 하는 특급열차다.

이 열차는 주로 시간과 공간을 바꾸어준다. 걸리버는 항해를 하다 불시착하고, 앨리스는 토끼 굴에 떨어진 후 기이한 여행을 한다. 구운몽의 성진도 꿈속에서 새로운 인생을 산다. 나의 통합성은 유치된 채 또 다른 세상에서 삶을 경험하고 나를 확장한다.

그러나 만약 역주행의 열차를 타면 어떨까. 우리 집, 가족, 일상은 모두 그대로인데 오직 나만 변한다면? 익숙한 환경과 관계 속에서 나에게만 분열이 생길 때, 기존의 관계도 비로소 제 모습을 내보일 것이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를 자각하는 과정, 이 독특한 궤적이 바로 카프카의 ‘변신’이다.

이 책은 멀쩡한 청년이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바뀐 사건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아침에 눈을 뜨자 자신의 몸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딱딱한 등껍질, 배의 주름과 무수히 많은 가느다란 발들. 낯선 몸을 하고서도 그레고르는 그저 직업병이 오나 보다 치부할 뿐, 직장에 지각한 것에만 마음을 쓴다. 그에게 삶의 중심은 돈을 버는 일이었다.

그가 일에만 몰두하게 된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그는 5년 전 파산한 아버지, 천식이 심한 어머니, 미성년인 누이를 위해 집안의 청년 가장으로서 온 힘을 쏟아왔다. 매일 아침 5시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면서도 5년간 한 번도 결근한 적이 없었다.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청년이었지만,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이 날 단 한 번의 지각으로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인간을 이윤 수단으로 보는 냉엄한 자본주의 조직과 나약한 개인의 처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레고르에게 일어난 가장 잔인한 변화는 가족의 냉대다. 가족들은 마주치는 일조차 두려워 피하기만 할 뿐 그의 변화에 대해 가슴으로 슬퍼하지 않는다. 그레고르가 방 밖으로 나오자 사과를 던져 공격할 정도로 극도의 혐오감을 표출한다. 그동안 안락한 삶을 지탱해 준 그의 월급만을 아쉬워했을 뿐이다. 그레고르는 결국 더러워진 자기 방에서 여러 날을 굶주린 채 숨을 거둔다. 가장 소중했던 가족들이 돈 버는 기능인으로 그를 대했기에 그들의 양심과 냉정함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레고르의 마지막 삶에서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면은 소통이 단절된 관계이다. 그레고르는 가족이 나누는 모든 대화를 듣고 이해하면서도 인간의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수용만 가능할 뿐 표현을 할 수 없어 끝까지 가족을 걱정하던 그의 진심은 전달되지 못했다. 새벽 종소리를 들으며 외롭게 내뱉은 그의 마지막 숨결은 내면의 고독감을 공감케 한다. 소통 없이 단절된 현대인의 인간관계와 자기 소외의 결말이다.

그런데 그레고르는 도대체 왜 벌레로 변했을까? 작가인 카프카는 책 속에서 이 비극의 이유나 과정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레고르는 자신의 분열을 받아들인다. 왜냐고 묻지 않는 행위는 그가 평소 자기 삶을 들여다볼 수 없었음을 짐작케 한다. 벌레가 되고서야 직장 생활의 느낌, 가족에 대한 속생각을 하나씩 되새길 뿐이다. 자기를 낯설게 여길 힘조차 없는 피폐한 주체성이 그의 온순함에 겹쳐 슬픔을 준다.

따지고 보면 이 사건은 오로지 그레고르만의 것은 아니다. 벗어나고 싶다는 것은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내면의 자각이다. 현실에 얽매일수록 나에 대한 직면은 예기치 않은 어느 순간에 찾아올 것이다. 어떤 자세로 낯선 나를 만날 것인가. 현실의 예비 그레고르들에게 카프카가 던지는 궁극적 질문이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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