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토플주제]수메르 문명

  • 입력 2009년 5월 25일 02시 52분


농경… 건축… 문자… 기록… 직조… 인류문명 씨뿌린 ‘最古의 요람’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은 수메르 문명이다. 수메르 문명에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비상한 관심이 몰렸다. 수메르인이 인류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나날이 새롭게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인들이 의복 - 문자도 없을때 이미 염색옷 - 설형문자 만들어

운하·제방 등 수준 높은 농업지식 축적… 고대 그리스·이집트 등에 영향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서는 ‘수메르(Sumer) 문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The surplus of storable food created by this economy allowed the population to settle in one place instead of migrating after crops and grazing land. It also allowed for a much greater population density, and in turn required an extensive labor force and division of labor. This organization led to the necessity of record keeping and the development of writing.(이러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충분한 식량저장량을 확보한 수메르인은 유목 생활을 청산하고 한곳에 정착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는 인구밀도를 높이고, 노동력의 증강과 분업화를 촉진시켰다. 이런 특성은 기록 저장의 필요성을 만들어 냈으며, 기록의 발전을 가져왔다.)’

그럼 이제는 수메르 문명의 배경, 역사, 문화에 대해 알아보자. 수메르인은 대략 기원전 3500년부터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풍부한 충적토로 비옥해진 땅을 경작했다. 당시에는 강우량이 현재보다 적었기 때문에 척박한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거주한 사람들의 관심사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잘 관리해서 농업용수와 식수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수메르어에는 운하, 제방, 저수지 등에 관련된 단어가 많다. 이를 통해 수메르인이 농업 기술에 관해 상당한 지식을 갖췄음을 추측할 수 있다.

수메르의 도시국가들은 선사시대의 우바이드기와 우르크기에 성장했다. 고대 수메르는 기원전 24세기에 아카드 제국이 들어서면서 막을 내린다. 이후 구티인 지배 시기를 지나 기원전 22세기에 ‘수메르 부흥기’를 맞았다가 기원전 20세기경에 아모리인이 침입했다. 아모리인의 이신 왕조는 기원전 1730년, 메소포타미아가 바빌로니아 지배 아래 들어갈 때까지 유지됐다.

수메르인은 자신들의 나라를 ‘문명화된 땅’이라고 불렀다. 이는 그 당시 수메르가 가장 발달된 문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들의 문명은 고대 이집트, 바빌론, 그리스 문명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수메르인이 설형문자를 사용할 때 히브리인들은 문자도 없었고 옷이란 동물 가죽을 벗겨 입고 다니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수메르인은 이미 직조 기술을 개발해 옷을 물들여 입고 다녔으며, 건축술도 발달해서 2층 가옥을 지을 정도였다. 수메르인의 뛰어난 건축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구라트(Ziggurat) 신전’일 것이다. 현재도 웅대한 자태를 보존하는 이 신전은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의 모델로 여겨지고 있다.

*구티인: 고대 메소포타미아 동방의 자그로스 산맥에 거주한

산악 민족

*아모리인: 셈계 민족을 말하는데 기원전 3번째 천 년의 후반

에서 유프라테스 강 서쪽의 나라를 점유했다.

이관수 영재사관학원 예스영어사관 평촌본원 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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