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자살 시도, 가족관계 회복으로 막는다

  • 입력 2009년 5월 14일 02시 57분


강압적 아버지 태도 바꾸자 딸 병세 호전
가족치료 통해 발병 원인부터 바로잡아

“자살을 시도한 딸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됐습니다.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는데 뭐가 부족할까 싶었습니다. 딸이 나약한 것 같았어요. 하지만 깨달았습니다. 딸의 문제는 우리 가족의 문제이자 저의 문제였습니다.”

사업가 A 씨(50)의 딸 C 씨(22)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해외유학을 간 뒤 우울증에 걸렸다. 이후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A 씨는 딸을 국내로 불러 병원에 보냈지만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A 씨에게 “같이 치료를 받자”고 제안했다. A 씨는 “딸이 이상한데 왜 나한테 그러느냐”며 화를 냈지만 아내마저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가족치료센터를 방문했다. 세 가족이 속마음을 나누는 자리에서 딸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왕따’였어요. 집이 자주 이사를 해서 그렇게 됐는데, 그걸 한탄하자 아빠는 ‘왜 그렇게 까다롭고 유별나냐’며 화만 내셨어요.”

딸의 고백을 들은 A 씨는 “생각해보니 딸은 중학교 때부터 나를 아빠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유학을 보내는 등 딸에게 최선을 다했다고만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후 A 씨는 강압적이던 자신의 태도를 되돌아보고 딸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딸의 우울증은 완화됐다.

가족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가족치료’가 우울증과 자살의 방지 대안으로 부각하고 있다. 주부 이모 씨(48·여)도 최근 가족치료를 통해 아들의 우울증이 자신의 우울증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씨는 아들이 우울증 치료를 거부하자 답답한 마음에 가족치료센터를 찾았다. 이 과정에서 화를 잘 내는 남편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 불안감, 우울감이 커지면서 아들에게까지 우울증이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씨와 아들은 함께 치료를 받은 후 증세가 완화됐다.

가족치료는 가족 중 한 명이 우울증 등으로 자살을 시도할 경우 이를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을 둘러싼 ‘가족’이라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는 관점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개인이 아닌 가족 단위를 치료 대상으로 삼는다.

서울 강북구의 김모 씨(45)는 방을 지저분하게 쓰는 고등학생 딸을 자주 혼냈다. 어느 순간 딸이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 딸은 집에서 말 한마디 안 할 정도로 위축됐다. 김 씨는 아내의 권유로 가족치료를 시작했다. 비로소 자신의 강압적인 행동과 비난이 딸의 우울증을 유발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 씨는 “딸에 대한 비난을 멈추자 딸이 나아졌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 가족치료 전문가는 100여 명. 한국가족치료학회에서 육성한다. 가족치료사들은 △가족 누군가를 대신하는 역할극 △가족 인형을 놓고 관계를 알아보는 심리분석 △마음을 여는 대화법 등을 통해 가족 간의 문제점을 파악한다. 분석을 토대로 관계에 문제가 있을 경우 이들을 소통시켜 가족 간 관계를 회복하는 데 주력한다.

아하가족성장연구소 이화자 소장은 “자살을 시도하거나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의 가족을 상담해보면 상당수는 가족 전체에 문제가 있다”며 “‘내 자식, 내 부모가 이상해졌다’는 생각보다 ‘혹시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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