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횡령 적발해도 고발은 42%뿐

  • 입력 2009년 3월 26일 02시 58분


3년간 내부적발 331명 중 193명 자체 징계

권익위 “횡령 공직자 형사고발 의무화 추진”

농업협동조합은 지난해 공금 2억7100만 원을 횡령해 주식투자에 쓴 4급 직원을 내부 감찰에서 적발했다. 그러나 농협은 이 직원을 형사고발하지 않고 면직처분만 내렸다. 지난해 말 이명박 대통령에게 경영이 방만하고 도덕적 해이가 심하다는 질책을 받았던 농협은 2006∼2008년 3000만 원 이상을 횡령한 직원을 19명이나 적발했으나 이 중 9명만 형사고발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5일 지난 3년간 각급 행정기관의 횡령사건 징계처리결과를 분석한 결과 자체적으로 적발된 횡령 공직자의 58.3%가 형사고발을 당하지 않고 내부징계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권익위의 부패통제시스템인 ‘제로미사이트’에 따르면 2006∼2008년 공금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된 490명 중 검찰과 경찰에 적발된 사람이 159명(32.4%)이었고 자체 감사 등을 통해 내부적으로 적발된 사람은 331명(67.6%)이었다. 331명 중 193명(58.3%)이 사법기관에 고발되지 않고 자체 징계만 받았다, 특히 3000만 원 이상의 거액을 횡령했다가 적발된 113명 중 40명(35.4%)도 자체 징계만 받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경기 성남시는 2007년 4200만 원을 횡령한 7급 직원을 적발했으나 전액 변상받고 해임 조치했다는 이유로 고발하지 않았다. 경기도교육청은 3100만 원을 횡령한 9급 직원을 해임 조치하고 마무리했다. 권익위는 이런 ‘제 식구 감싸기’식 처벌이 많은 것은 현행 법규의 미비에도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총리 훈령인 ‘공무원의 직무 관련 범죄 고발 지침’에는 범죄사실이 드러난 직원은 기관장이 형사고발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세부기준은 기관별로 운영하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기관들은 제각기 다른 내부 기준에 따라 자의적인 판단으로 고발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농협은 2007년 5월까지는 ‘3억 원 이상 횡령한 직원을 고발한다’는 내부 기준을 갖고 있다가 너무 느슨한 기준이라는 지적에 따라 ‘고발을 원칙으로 하되 인사위원회에서 고발 여부를 결정한다’고 기준을 바꿨다. 수협도 인사위원회에서 고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200만 원 이상, 철도공사와 한국전력은 500만 원 이상을 횡령해야 고발하도록 돼 있다.

권익위 김상식 법령제도단장은 “국무총리실과 사법당국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한 푼이라도 횡령한 공직자는 원칙적으로 형사고발하도록 총리훈령이나 공직자행동강령을 개정해 이르면 5월 안에 시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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