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세상이 무서워… 나, 집에만 있을래”

  • 입력 2009년 3월 24일 03시 04분


실직-경기침체 등 사회불안 계속

사회공포증 환자 3년새 53%↑

수개월 칩거 등 극단적 은둔생활

‘자포자기’ 실태 파악, 대책 마련을

전남 순천에 사는 유모 씨(28)의 하루 일과는 오후 4시에 시작된다. 점심 겸 저녁을 챙겨 먹고 TV를 보거나 인터넷 서핑, 게임 등으로 종일 시간을 보내고 새벽에 잠이 든다. 최근 두 달간 유 씨는 밖에 나간 적이 거의 없다. 70kg였던 몸무게도 90kg으로 늘었다.

유 씨가 이런 생활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 대학을 중퇴한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한때 일부러 헬스클럽 등을 찾는 등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 했지만 집을 나서면 불안해졌고 혼자 집에 있는 것만이 편안했다. 유 씨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면 내가 너무 못생겼고 그 누구도 만족시켜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만 있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2주간 병원에 입원해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실직, 고용불안, 경기침체 등 사회불안이 계속되면서 극단적인 심리적 위축과 함께 사회활동에 대한 공포감을 호소하는 사회공포증(social phobias) 환자가 늘고 있다.

사회공포증이란 사회적 좌절, 불안을 경험한 후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하기 시작해 자신에게 필요한 사회적 활동을 회피하고 혼자 있길 원하는 등 사회적 기능이 저하되는 상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사회공포증 환자인원 통계’에 따르면 2005년 9519명이던 사회공포증 환자는 2006년 1만1561명, 2007년 1만4010명, 2008년 1만4598명으로 3년 사이 53% 증가했다.

사회 진입 자체가 어려워진 20∼30대, 한번 실직하면 재취업이 어려운 40대에서 사회에 대한 공포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40대 사회공포증 환자는 2005년에 비해 66%, 20대는 42%, 30대는 38% 증가했다.

오강섭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문제는 이를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개인의 내성적 성격 탓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에 대한 공포는 극단적인 은둔생활로 이어진다. 구직에 실패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 그만둔 후 최근 5개월을 거의 집에서 보낸 김모 씨(26)는 “외출하려 했지만 집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못난 사람이라고 하는 것 같아 그냥 집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올해 초 화제가 된 ‘미네르바’ 박대성 씨도 수개월 동안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기만 했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경기 불안이 계속되면서 경쟁구도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스스로 외부와의 선을 긋는 추세인 데다 여기에 인터넷 중독증이 겹쳐 은둔 계층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백종우 경희대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에 편입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에만 박혀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구체적인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이에 대한 논의와 사회적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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