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기회 두얼굴의 물을 잡아라… 기업들 ‘물의 전쟁’

  • 입력 2009년 3월 21일 02시 58분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윤동주의 ‘봄’) 강원 삼척시 미로면의 작은 실개천. 물길을 막고 앉아 달래를 씻는 아낙의 손이 분주하다. 22일은 ‘제17회 세계 물의 날’. 부드럽게 흐르는 물길이 메마른 마음을 촉촉이 적신다. 삼척=전영한 기자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윤동주의 ‘봄’) 강원 삼척시 미로면의 작은 실개천. 물길을 막고 앉아 달래를 씻는 아낙의 손이 분주하다. 22일은 ‘제17회 세계 물의 날’. 부드럽게 흐르는 물길이 메마른 마음을 촉촉이 적신다. 삼척=전영한 기자
물부족 위기 - “공장 못돌릴 수도” 총성없는 물 확보 경쟁
물 사용량 많은 반도체 - 전력산업 등 비상

‘블루골드’ 기회 - 돈되는 세계 상하수도 시장만 年 500조원
한국 생수시장 4400억 규모… 70개社 각축

22일은 제17회 ‘세계 물의 날’.

지구촌 곳곳에서 물 부족으로 아우성이다.

물 부족은 생태계를 파괴하기도 하고 국제적 분쟁의 주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흔한 것 같으면서도 소중한 것이 물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미국과 유럽 기업들은 물을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에의 귀속’이라는 운명적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류가 오히려 물을 객체화해 활용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물’은 두 얼굴을 가졌다.

기업에 기회이자 위협 요인이다.

원유를 뜻하는 ‘블랙 골드(검은 황금)’에 이어 ‘블루 골드(파란 황금)’로 불리며 새로운 시장을 열어준다.

반면 지구 온난화로 인한 물 부족 사태는 기업에 위협이다.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물을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 새로운 시장, 물

세계 물산업 시장은 상하수도 시장만 2005년 현재 연간 500조 원 이상의 규모다. 전통적으로 국가가 담당하던 상하수도 사업을 전문기업으로 넘기는 추세가 이어지면서 시장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산업에선 유럽 기업이 강세다. 매출액 기준 10위 안에 9개나 포진했다.

특히 프랑스는 정책적으로 지원해 베올리아와 수에즈라는 세계 최대의 물기업들을 키워냈다. 이들 기업의 매출액은 2005년 현재 각각 98억500만 유로(약 18조4334억 원)와 69억8600만 유로(약 13조1337억 원)에 이른다. 상하수도 서비스를 받는 고객도 각각 1억 명이 넘는다.

한국의 물산업도 이미 걸음마를 시작했다.

국내 물산업 분야 해외수출액은 2004년 기준으로 5800억 원 정도다. 그러나 핵심인 상하수도가 아니라 해수담수화나 수로 건설 등이 대부분이다.

두산중공업 담수BG(Business Group)는 이름을 ‘Water BG’로 최근 바꿨다. 해수담수화 중심에서 물산업 전반으로 사업을 확대하자는 취지다.

이 회사는 1970년대부터 해외 해수담수화 시장을 개척해 2000년대 들어 이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올라섰지만 물산업 전체로 보면 아직 규모가 작다.

코오롱도 2001년 민영화된 환경시설관리공사를 2006년 524억 원에 인수하면서 하수처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물은 식음료 시장에서도 커피와 와인에 이어 새로운 ‘블루 골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한국 생수 시장 규모는 4400억 원으로 70여 개 업체에서 100여 종에 이르는 ‘물’이 경쟁하고 있다.

10, 20대 젊은층은 특정 브랜드의 생수병을 자신의 패션 소품으로 활용할 정도다. 환경부에 따르면 생수 수입업체로 등록된 50개사 가운데 70%가 패션의 본고장인 프랑스산(産)이다.

○ 기업들, 안정적인 물 확보 비상

가뭄과 홍수 등 이상기후에 따른 천재지변으로 산업계는 ‘안정적인 물 확보’라는 위협에 직면했다.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산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또 한정된 물 자원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 등 이해관계자와의 분쟁으로 공장을 폐쇄하거나 이전하는 사례도 종종 일어난다.

제품 생산에 물을 많이 사용하는 정도를 뜻하는 ‘물집약도’가 높은 산업일수록 위기는 심각하다.

기관투자가 및 환경운동단체의 연합체인 세레스는 최근 ‘물 부족과 기후변화’라는 보고서에서 물집약도가 높은 대표적인 산업으로 의류, 반도체, 식음료, 곡물재배, 제약, 펄프제지, 광업, 전력 등 8개를 꼽았다.

특히 반도체와 같은 하이테크 산업의 물집약도는 놀라울 정도다.

2007년 한 해 인텔과 텍사스인스트루먼츠가 반도체 생산을 위해 사용한 물의 양은 440억 L에 이른다.

JP모간에 따르면 두 회사의 물 관련 공정에 문제가 생기면 분기당 예상손실만 1억∼2억 달러(약 1400억∼2800억 원)에 이른다.

다국적 기업들이 노동력이 싼 개발도상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물 부족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측면도 있다.

개도국은 빠른 인구성장과 경제성장으로 물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공장들의 물수요도 덩달아 늘면서 물 확보를 위한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인도 케랄라에 있던 펩시와 코카콜라 공장은 식수를 기업들이 모조리 빼앗아간다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부닥쳐 최근 공장을 옮기기도 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동아일보 이훈구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