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동아논평]촌지 없는 세상, 언제 오려나

  • 입력 2009년 3월 20일 17시 23분


◆동아논평

동아논평입니다.

제목은 '촌지 없는 세상, 언제 오려나'. 정성희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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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가 되면 학부모의 가장 큰 관심사가 '어떤 담임을 만날까'입니다. 담임은 자녀와 1년을 함께 생활하게 될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그 못지않은 이유가 촌지에 대한 고민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촌지를 받을 사람인가, 촌지를 주면 얼마를 줘야 하나, 촌지를 주었다가 거절당하면 어쩌나. 부모로서는 현실적 고민입니다.

실제로 촌지에 관한한 전설적 얘기들이 많이 나돌고 있습니다. 어느 초등학교 교사의 집을 경찰이 수색했더니 포장도 뜯지 않은 립스틱이 3000개가 나왔다든가, 밤늦게 초인종이 울려 나가봤더니 미혼의 담임교사가 '토요일 결혼한다'며 남자친구와 함께 서 있더라는 얘기도 들립니다.

부모들의 이런 고민이 기우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국가권익위원회가 이달 초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전국 학부모 1660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더니 18.6%가 '촌지 제공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지역별로는 서울 강남지역이 36.4%로 가장 높았고 전남(36.2%), 부산·광주(31.9%)의 비율도 높았습니다.

그런데 촌지에 대한 학부모의 태도가 재미있습니다. 학부모의 46.8%가 '촌지는 뇌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뇌물은 아니지만 없애야할 관행'이라는 응답도 똑같이 46.8%였습니다. 95%이상의 학부모들이 촌지는 잘못된 관행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학부모와 교사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부모가 촌지를 건네는 이유는 교사가 내 아이만을 잘 봐주든가 아니면 최소한 불이익을 주지 말라는 뜻에서입니다. 학부모의 이기심이 문제라는 것이죠. 하지만 교사가 촌지를 마다하지 않거나 적극적으로 요구할 경우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학부모의 항변입니다.

어느 쪽 책임이 클까요? 학교와 교사의 책임이 더 크다고 봅니다. 외국에서 사는 한국인이 그쪽 교사에게도 촌지를 건네지는 않습니다. 교사가 촌지를 받지 않을뿐더러 자칫하면 경찰에 고발까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입니다.

요즘 교권 추락에 대한 우려가 높습니다만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누가 뭐라 해도 갑을의 관계입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낸 학부모가 약자라는 뜻이지요. 학교와 교사가 촌지를 받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일 때만이 학부모도 촌지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동아논평이었습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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