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파업-잇단 비리에 신물”… 노동운동 ‘제3의 길’ 모색

  • 입력 2009년 3월 20일 03시 00분


NCC노조, 민노총 탈퇴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산하 NCC 노동조합 김주석 지회장(가운데)이 19일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민주노총 탈퇴 기자회견을 열고 “민노총은 정치투쟁을 멈추고 노조 본연의 활동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NCC노조, 민노총 탈퇴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산하 NCC 노동조합 김주석 지회장(가운데)이 19일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민주노총 탈퇴 기자회견을 열고 “민노총은 정치투쟁을 멈추고 노조 본연의 활동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6개 지하철 노조, 지방공기업-공무원 노조 연대

내년 복수노조 허용되면 노동계 지각변동 가속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으로 양분된 국내 노동계의 판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18일 울산의 폐기물 처리업체인 NCC의 민주노총 탈퇴에 이어 19일에는 민주노총 산하 화학섬유노조 영진약품지회가 민주노총에 공문을 보내 탈퇴를 공식 통보했다.

영진약품 홍승고 지회장은 “노동현장의 어려운 사정은 모르고 원칙과 지침만 내세우는 민주노총과 더는 함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지하철 등 공기업과 공무원 노조를 중심으로 새로운 노동조합총연맹(제3노총)이 세워지면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 노조의 이탈 움직임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 기존 상급단체에 대한 불신 팽배

제3노총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모두 거부한다. 민주노총이 지나치게 정치에 참여하고 과격한 투쟁, 비타협, 계파싸움 등을 일삼는 게 실제 근로자에게 필요한 노동운동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NCC, 영진약품 등 일부 노조가 경제위기로 조합원의 일자리 유지 차원에서 노사화합선언을 하자 민주노총은 징계 등의 조치로 압박을 가했다.

NCC노조 김주석 위원장은 “노동 현장에선 해직에 대한 공포를 겪으며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노사 상생을 고민하고 있다”며 “민주노총은 ‘정권과의 한판 싸움’만을 주장해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노총을 리모델링해서 내부 혁신을 꾀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집행부 선거와 계파싸움에 매달려 선거에서 이기려면 강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정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민주노총에는 강성과 온건 사이에 중간지대가 없고 이를 추진할 만한 세력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 이어지는 노동계의 각종 추문도 조합원의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민주노총 간부의 성폭력 파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19일에는 한국노총 소속 국민은행 노조 집행부가 4000만 원의 조합비를 유흥비로 탕진한 사실이 밝혀졌다.

기존 노동운동의 행태에 염증을 느끼면서 양대 노총에서 이탈하는 노조원들은 점점 늘고 있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미가맹 노조원은 2003년 4만4409명에서 2007년 26만5056명으로 6배 늘었다.

○ 제3노총 어떻게 그려지나

제3노총은 ‘조합원이 주인이 되는, 조합원을 위한 노조’를 지향한다. 조합원의 복지를 최대 관심사로 삼는다.

정연수 서울메트로 노조위원장은 “공무원과 공기업 등 공공노조를 모두 묶으면 그 규모가 줄잡아 20만 명에 이른다”며 “시민을 대신해 공기업의 비리와 방만한 경영 행태를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3노총 설립을 준비 중인 노조들에도 걸림돌은 있다. 6개 지하철노조 등이 기존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에서 탈퇴하려면 조합원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천지하철노조 사례에서 보듯 강경파 조합원들이 주도해 민주노총 탈퇴를 방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제3노총 추진 세력은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복수노조 허용 여부에 희망을 걸고 있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기업체 내에서 조합원의 요구에 부응하는 노조가 경쟁력을 갖게 된다. 정치파업과 이념성을 내세운 민주노총에서 이탈하는 노조가 속출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종훈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순히 양대 노총을 비판하는 것으로 새로운 노총을 추진하면 성공할 수 없다”며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이념과 비전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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