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정부 복지 보조금 왜?

  • 입력 2009년 3월 11일 22시 17분


장애인이나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갈 돈을 빼돌려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공무원들이 속속 적발되고 있다.

올해 1월 부산시 공무원 3명이 사회복지급여 2억2000여 만 원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진 것을 시작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나쁜 공무원'들이 발각되고 있다.

2월에는 서울시 양천구 8급 공무원 안 모 씨가 장애인 수당을 부풀려 무려 26억 여 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9일 용산구에서 똑같은 사례가 적발된 데 이어 10일에는 전남 해남군 읍사무소 7급 여성 공무원 장모 씨가 5년간 10억 원이 넘는 사회복지급여를 빼돌린 사실이 밝혀졌다.

11일에는 경기 양평의 면사무소 직원이 주민지원사업비 2800만 원을 횡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에게 정부의 보조금은 '눈먼 돈'이었다. 이들은 빼돌린 돈으로 벤츠를 몰고,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샀다. 아파트와 부동산을 구입했고, 개인 빚을 갚았다.

잇단 공무원들의 횡령 사건은 연간 10조 원이 넘는 정부의 복지 관련 보조금 지급 실태가 얼마나 부실한 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현재 시스템에서는 나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는 게 관련 공무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횡령에는 세 번의 기회가 있다

보조금 지급 흐름을 보면 담당 공무원은 보조금이 대상자에게 지급될 때까지 세 차례나 돈을 빼돌릴 여지가 있다.

우선 읍면동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은 대상자의 현황을 파악하고 자료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허위로 자료를 올릴 수 있다. 해남군 읍사무소 여성 공무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공무원은 남편과 아들, 지인 등의 명의로 34개의 차명계좌를 만든 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아닌 사람들 급여 대상자로 끼워 넣었다.

전라남도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이 나쁜 마음을 먹고 기본 자료를 허위로 올리면 상급자가 이를 적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무원의 수가 한정돼 있는데다 복지 대상자는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고 말했다.

두 번째는 기본 자료를 넘겨받은 구청이나 시청 공무원이 이 자료를 표 형식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금액 등을 임의로 조작할 수 있다. 26억 여 원을 빼돌린 양천구 안 모 공무원은 이 수법을 사용했다.

공무원이 인터넷뱅킹으로 대상자에게 보조금을 전달하는 과정에도 빈틈이 있다.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재무과 등을 통해 직접 보조금을 보내지 않고 공무원으로 하여금 인터넷뱅킹을 사용하게 한다. 공인인증서를 담당 공무원만 갖고 있으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보조금 정책은 전문가용(?)

11일 찾은 한 광역 지자체 구청의 사회복지과.

얼마 전 출산 휴가를 다녀왔다는 한 직원은 "장애인 수당만 해도 장애수당, 장애아동 부양 수당, 시설장애수당으로 나뉘고, 영유아 지원비는 나이에 따라 다 다르다"며 "3개월 휴가를 갔다 왔더니 너무 복잡해서 새로 공부를 하고 있다. 위에서 보조금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수학 박사들인 것 같다"고 푸념했다.

부산시의 한 공무원은 "보조금을 내려 보내는 곳이 보건복지가족부, 노동부, 환경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여러 곳인데다 종류도 수십 가지여서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면 담당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가 힘들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일 많고 복잡한 복지 담당 업무는 대표적인 3D 업종으로 꼽힌다. 격무에 비해 직업 만족도는 낮고 한 곳에서 오래 근무하는 경향이 있다. 해남군 읍사무소 공무원도 6년째 같은 자리에서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 손놓은 정부와 지자체

사정이 이렇지만 정부나 지자체의 관리 감독은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횡령 사건이 속속 터지자 복지부와 행정안전부, 감사원, 각 지자체가 앞 다퉈 대대적인 감사에 나섰지만 이전까지는 제대로 된 감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복지 사업 관련 주무 부처인 복지부는 지자체 복지 담당자에 대해 이전까지 한번도 전면적인 감사를 한 적이 없었다. 복지부 감사 담당 공무원은 행정안전부가 16개 시도에 대해 2, 3년 간격으로 종합 감사를 실시할 때 1,2명 정도 참여했다. 그나마 표본 감사라 횡령 공무원을 적발하기란 어려웠다.

복지부 감사관실 관계자는 "복지부는 감사 권한이 없어 행안부 및 감사원 감사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지자체들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양천구 공무원이 26억 원을 횡령할 때까지 구나 서울시가 전혀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서울시내 한 구청 관계자는 "이전까지 표본 감사만 하다가 올해 1월 부산에서 사건이 처음 터진 뒤 지시를 받고 처음으로 전면 감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들과 지자체들은 보조금 지급 실태 파악과 함께 보조금 지급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보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충청대 김준환(사회복지학부) 교수는 "현재는 시스템 자체가 검증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는데다 공무원들의 업무까지 과중해 스크린 장치마저 없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복지 부문의 업무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업무 분담을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헌재기자 uni@donga.com

장윤정기자 yun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