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함인희]KAIST 입시개혁을 보며

  • 입력 2009년 3월 10일 02시 57분


“각종 경시대회 수상 실적을 입시에 반영하지 않겠다.” 서남표 총장이 5일 발표한 KAIST 입시개혁안을 둘러싸고 파문이 만만치 않게 번지고 있다. 경시대회 수상 실적을 대학입시에 반영하기 시작하면서 다종다양의 경시대회가 양산되고 경시대회 입상을 목표로 사교육이 활개 치게 된 상황을 부인할 순 없을 터. 서 총장의 용기 있는 결단에 우선 박수를 보낸다.

역발상의 의미있는 실험

“1, 2점 차로 학생의 당락을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서 총장의 주장은 대학입시 현장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보았다면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우리네 입시의 한계이기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비법이 있다면야 굳이 반대할 이 없을 것이다. “학생의 창의성과 잠재력을 심층적으로 파악해 사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 지방의 똑똑한 학생을 많이 뽑겠다”는 서 총장의 각오 또한 엄청난 사교육 열풍에도 불구하고 학생의 창의력이나 대학의 경쟁력은 크게 호조되지 않는 상황을 절감하고 있기에 호기로운 선언으로 그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다만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건 4500만 전 국민이 교육 전문가라는 농담이 무색하지 않은 현실에서 KAIST 입시개혁안은 KAIST만의 선택에 머무르지 않고, 차제에 불거진 경시대회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둘러싼 논쟁도 KAIST 입시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대입 선발 방식이 고교 교육제도의 근간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KAIST의 선택은 기존 입시 제도를 향한 의미 있는 실험이 될 것이다. 또 명문대 합격률이 학교 서열의 최우선 지표로 설정된 상황에서 KAIST의 선택은 기존 과학고의 특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이미 한쪽에선 KAIST의 입시개혁안이 실패로 끝날 것이란 성급한 진단이 나오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경시대회의 공과를 놓고 사교육을 부채질한다는 점에선 우려의 대상이지만 수학 과학 분야의 우수 인재를 선발해 심화학습의 기회를 제공해 온 점에선 격려의 대상이란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관건은 경시대회의 존폐가 아님은 자명하다. 그보다는 공교육의 부실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과열양상만 더해가는 사교육의 폐해가 문제요,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교육비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학 경쟁력은 아시아권에서도 초라한 성적에 머물러 있음이 문제의 핵심인 게다.

이처럼 확실한 고비용 저효율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대학 교육 현장에선 학생의 공부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가는데 정작 학생의 학업수행 능력은 퇴보한다는 역설을 경험하는 중이다. 선행학습이 성행하고 대입요령이 정교해질수록 학생들은 극히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사고에 자신을 맡긴 채 출세지상주의에 빠져버리는 듯하다. 유명 사립대의 신입생이 “교수님은 강의를 참 못 하시네요. 요약 좀 해 주십시오”라고 담당교수에게 항의를 했다는데, 웃어버리고 말기엔 슬픈 강의실의 현주소 아니겠는지.

공교육 살릴 후속 개혁을

KAIST 입시개혁안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KAIST 입시개혁안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지, 우리 자녀의 잠재된 창의력을 충분히 계발하기 위해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낭비하는 사교육비의 상당 부분을 공교육으로 되돌림이 필수일진대 이를 위해 어떤 정책을 도입해야 할지, 우리 교육이 진정 고비용에 걸맞은 고효율의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교육 문화 전반을 어떤 방향으로 개혁해야 할지에 대해 필히 답해야 한다. KAIST 입시개혁안의 뒤를 이어 제2, 제3의 참신한 개혁안이 나오길 간절히 소망한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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