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아이들 글쓰기 실력이 ‘쑥’

  • 입력 2009년 3월 4일 07시 32분


“동생기저귀 갈아주니 엄마가 된 기분…

아빠는 내손 깨물어주는게 좋은가 봐…”

“나는 동생의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동생이 자꾸 움직여서 너무나 힘들었다. 그래도 내가 왠지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김지윤, ‘동생돌보기’)

“아빠는 내 손 깨무는 것을 좋아한다. 아빠는 내가 아플 거라는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속상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난 아빠 손을 깨물어 줄 기회가 없다. 내 생각엔 아빠는 내 손이 귀여운가 보다.”(신정수, ‘내 손을 깨무는 아빠’)

이 글들은 대구시교육청이 최근 펴낸 ‘2008 글쓰기 워크시트 우수작품 모음집’이라는 책에 실린 내용이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 쓴 것으로, 거창한 주제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느낀 점을 솔직하게 담아 ‘좋은 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구시교육청이 2007년부터 대구의 초중학생 30여만 명 모두를 대상으로 시작한 글쓰기 활동이 작지만 소중한 결실을 낳았다. ‘삶쓰기 100자 노트’와 함께 나눠준 ‘글쓰기 워크시트’에 학생들이 자신의 생활을 묘사한 내용이 8종류의 책으로 나온 것이다.

△나도 쓸 수 있어요(초등 1학년) △글이 막 쓰고 싶어요(〃 2학년) △신난다 글쓰기(〃 3학년) △마음껏 써요(〃 4학년) △글쓰기, 자신 있어요(〃 5학년) △글쓰기, 이 좋은 공부(〃 6학년) △글은 왜 쓰지?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중학교 1단계) △우리들 이야기(〃 2단계) 등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초중학생의 글 1138편이 실렸다.

마치 얼굴이 다른 1100여 명의 학생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듯하다.

중학교 1학년 윤성은 양은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을 읽은 감상문에서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가끔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 맞춰 학원 가고, 별 생각 없이 숙제하고, ‘내 삶을 성실하게 살고 있을까’하는 자괴감이 든다. 이런 나에게 이 책은 친절한 대답을 해주었다”라고 제법 사려 깊게 표현했다.

2006년 ‘아침독서 10분 운동’을 시작으로 대구 학생들의 읽기와 쓰기능력을 키우기 위해 눈에 띄는 정책을 주도한 대구시교육청 교육정책과 한원경 장학관(50)은 무척 감격스러워했다.

이 책을 대구의 모든 초중고교 국어교사들에게 나눠준 그는 “최종 목표는 학생들이 책을 쓸 수 있을 만큼 사고력이 풍성해지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며 “이런 기본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자기 삶의 유익한 동반자가 될 정도의 글쓰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대구 수성구 만촌동의 동원중학교는 지난해 전교생 940명이 ‘삶쓰기 100자 노트’ 등에 쓴 글을 모아 196쪽 분량의 ‘동원, 우리들의 이야기’를 처음 만들어 2일 시작된 새 학기에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서병련 국어교사(53·여)는 “TV나 인터넷에 빠져 별 생각이 없이 살아가는 모습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이 같은 활동이 그나마 머리를 정화해주는 ‘약’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