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김수환, 그도 한때 神을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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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2월 21일 08시 19분



“나는 석양을 좋아합니다. 그 자체가 아름다워서 좋고, 무언지 모르게 내 마음은 아득히 먼 무엇인가로 향하게 하는 데서 석양은 마음의 고향처럼 다정하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나의 인생은 고향 길 가까이 와 있습니다.”

지는 해를 사랑한 김수환 추기경, 마음이 한없이 가난했기에 일생동안 음지의 사람들을 돌보았다. 그런 그이지만, 추기경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었다. 그는 성직자가 되고 나서 자신이 가난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독신생활을 하기에 다른 이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닌지, 조건 없는 사랑이 가능한 지 끝없이 고뇌를 거듭했다.

김수환 명상록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1999)은 그를 종교 지도자, 사회의 원로라는 관점보다 ‘인간 김수환’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책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신앙과 사랑’, ‘매스컴에서 본 33가지 김수환 추기경 모습’ 등 그를 조명한 여러 과거의 서적 중 그와 직접 대화하는 느낌으로 볼 수 있다.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쓴 수필들과 1979년, 1982년 8일 간의 육필 신앙고백이 그대로 담겨있다. 특히 솔직한 인간적인 고민들로 인해, 그가 어떠한 마음으로 세속의 수많은 번뇌를 극복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인중이 길어서 오래 살 것”이라는 사람들의 얘기에 오랜 세월 자랑할 것보다 한없이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고 후회한다. 불행의 연속으로 ‘무신론자’가 되어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역시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몰라 고민도 했다.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번뇌도 많았으나, 그래도 결국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통해 마음은 깨끗해지고 믿음이 강해졌음을 고백했다.

그는 “추기경님! 추기경님!”이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와중에도 “지금보다 더 늙어서 볼품없이 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또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람의 마음은 약하고 노여움을 타기 쉽습니다”며 늙음 또한 걱정했다. 그러나 암으로 별세한 미국 시카고교구의 베르나르딘 추기경에게 마지막 성탄카드를 받았던 때를 회상하며, 그 역시도 죽음은 인생을 감사하게 되는 과정임을 떠올린다.

인간의 마음은 변덕스럽고 약하고, 질그릇같이 깨어지기 쉬웠다. 그의 육필 원고들은 그 역시 그 과정을 겪었음을 담담히 고백하는 글들이다.특히 그가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고 사회적인 고민을 치열하게 했는지 느낄 수 있다. 그의 책에서 엿본 고통의 대안은 결국 ‘조건 없는 사랑’이다.

“사랑에 사로잡힌다. 곧 사랑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투항해야 한다. 조건 없는 투항! (김수환 육필 신앙 고백 中)”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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