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는 수사반장? 전국에 감시의 눈 1만5092개

  • 입력 2009년 2월 20일 02시 56분


“범죄 예방” 지방자치단체 CCTV 설치 붐

《17일 자정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거리. 어두컴컴한 골목길에 다소 불량해 보이는 10대 세 명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역삼지구대 내에 위치한 강남구 폐쇄회로(CC)TV 관제센터. 한 모니터요원이 버튼을 눌러 이 골목길 사거리 전봇대에 설치된 카메라를 상하좌우로 조정하자 모니터에 이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목구비까지 자세히 보였다. 40평 남짓한 관제센터 내 한쪽 벽면에는 50인치 모니터 26개가 설치돼 있다. 모니터들은 412개의 눈(CCTV)을 통해 강남 지역 곳곳을 화면에 비춰 준다.》

최근 강력범 검거 일등공신… 올해만 6000여대 추가

서울 강남구 462대-구로구 32대… 재정따라 빈부격차

CCTV 없는 지역으로 범죄 옮겨가는 ‘풍선효과’ 우려

“범죄감소 효과 적어… 순찰활동 등 보완해야” 지적도

강남구 일원동의 한 주택가 골목. 정체불명의 트럭이 갑자기 빨리 달려 CCTV 카메라의 시야에서 벗어나자 관제센터 요원이 ‘투망검색’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동서남북 여러 대의 CCTV가 동시에 움직여 사라진 트럭을 찾아 번호판을 확인했다. 경찰은 차적 조회를 시작했다. 장세룡 센터장은 “촘촘한 그물로 물고기를 잡듯 CCTV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 전국 CCTV 설치 열풍

최근 CCTV가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CCTV 설치를 확대하고 있다.

제과점 여주인을 납치해 돈을 뜯어내려던 범인은 경찰이 접선 장소에 설치된 CCTV를 판독하는 과정에서 검거됐다. 8명을 죽인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강호순 씨(39)는 여성을 유인해 경기 안산시로 이동하다 CCTV에 차량이 찍혀 경찰 추적을 받았고 자신의 집 주변에 설치된 CCTV 때문에 거짓 알리바이가 들통 났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서울 시내 초등학교에만 800대 이상의 CCTV가 추가로 설치될 계획이다. 제주시도 방범용 CCTV 300대를 설치할 계획이다. 경기 성남시에만 CCTV 526대가 추가로 설치된다.

행정안전부는 경찰력 부족으로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는 경기도에 CCTV 설치 예산 3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CCTV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전국 방범용 CCTV 설치 현황을 보면 2004년 538대, 2005년 1100대, 2006년 1978대, 2007년 5044대, 2008년 8761대로 4년 새 16배 이상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는 지난해의 2배 가까이 증가한 1만5092대가 전국에 설치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 해결에 CCTV가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CCTV가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주장보다 범죄예방, 범인검거에 효과적이라는 지적에 무게가 좀 더 실리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 “CCTV 부익부 빈익빈, 범죄 양극화 우려”

방범용 CCTV가 증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지역에서 고르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방범용 CCTV는 대부분 자치단체에서 설치하고 관리 등에 대한 예산을 지원하기 때문에 지자체의 살림살이 규모가 CCTV 설치에 영향을 미친다. 경찰은 설치된 CCTV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는 등 운영만 담당한다.

최신형 방범 CCTV 한 대의 설치비용은 약 1200만 원. 500여 대의 방범 CCTV를 관리하려면 약 1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더구나 차량번호자동인식시스템(AVI) 등 최신 기술이 접목된 CCTV는 수천만 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서울의 경우 예산이 많고 재정자립도가 높은 자치단체는 CCTV 설치가 활발하지만 재정자립도가 낮은 자치단체는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강남구 462대, 서초구 141대, 송파구 144대 등 ‘강남 3구’는 구별로 100대 이상 설치된 반면 강북구는 33대, 구로구는 32대, 동작구는 32대, 은평구는 44대가 설치돼 있는 등 자치구별로 최대 15배 차이가 났다.

전문가들은 CCTV가 설치된 곳은 범죄가 줄어드는 대신 CCTV가 설치되지 않은 주변으로 범죄가 옮아가는 ‘범죄의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최응렬 교수팀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 지역 강도 범죄를 분석한 결과 강남구 CCTV 도입 시기와 맞물려 상대적으로 CCTV가 적었던 수서, 서초 등으로 강도가 몰려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전국의 아파트와 빌라를 돌며 50차례에 걸쳐 1억 원 상당의 귀금속을 훔친 30대 중국인 3명은 경찰 조사에서 “범행 대상을 CCTV가 없는 지역으로 골랐다”고 밝혔다.

○ “CCTV가 만능은 아니다”

CCTV의 효과가 미비하다는 지적도 있다.

2005년 이후 서울의 CCTV가 501대에서 2007년 1480대로 3배 가까이 늘었지만 범죄도 23만7312건에서 24만7121건으로 증가했다.

단순 범죄나 우발적인 범행의 예방에는 CCTV가 효과적일 수 있지만 계획적인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는 범인이 CCTV의 존재를 미리 알고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을 방법을 강구해 범행을 저지르기 때문에 효과가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경미 계명대 경찰학부 교수는 “CCTV가 만능은 아니다. CCTV 설치와 함께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경찰의 순찰시스템 개선, 지역주민들의 치안관리 노력, 범죄예방 대책 등이 상호 보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500만 화소 ‘눈’ 밝아지고

360도 회전 ‘몸’ 빨라지고

스피커 장착 ‘목소리’ 내고

■ 진화하는 CCTV

경기 양주시의 모든 초등학교 앞에는 ‘말하는 폐쇄회로(CC)TV’가 있다. 학교 정문에 카메라와 스피커를 설치하고 주변을 관찰하다 문제가 생기면 교무실에 있는 지도교사가 즉각 경고하는 방식이다.

카메라 성능은 100m 떨어진 약국 간판을 판별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 주변의 불법주차나 무단횡단 등을 막는 데 충분하다. 수상한 사람이 학교 앞을 어슬렁거리거나 노점상이 불량식품 좌판을 벌일 때면 생생한 목소리의 경고 방송이 나온다.

인천 계양구에 설치된 190대의 CCTV는 카메라에 보안등이 부착돼 있다. 백색 빛 가로등이 물체를 환하게 비춘 상태에서 렌즈가 녹화를 하기 때문에 밤이 되면 ‘눈뜬장님’이 됐던 기존 CCTV의 한계를 보완한 것이다.

방범 기능도 탁월하다. 범죄 위협에 놓인 행인이 가로등 기둥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렌즈가 360도 회전해 주변이 곧바로 녹화된다. CCTV에 음성 송수신 장치를 달아 현장과 관제센터 간에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CCTV 보급 초창기인 1980, 90년대에는 낮은 화소의 TV 카메라를 아날로그 VCR에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카메라 렌즈는 27만 화소급으로 감시 범위도 근거리에 불과해 피사물의 대략적인 형태만 감별할 수 있었다.

디지털 방식의 CCTV가 도입된 것은 1990년대 후반. 이때부터 카메라로 찍은 정보가 하드디스크나 CD에 자동으로 녹화됐다. 파일 형태로 저장돼 장면 검색도 쉬워졌고 카메라 렌즈의 해상도도 42만 화소까지 높아져 차량 번호판 인식이 가능해졌다.

2002년부터는 네트워크 카메라가 개발돼 CCTV의 지능이 더욱 고도화되고 있다. 네트워크 카메라의 경우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 네트워크를 통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해상도도 최대 500만 화소의 카메라가 등장해 원거리의 얼굴을 확대해 볼 수 있다.

영국의 경우 비명이나 싸우는 소리 등을 인식해서 비추는 CCTV도 개발돼 있다.

이 같은 네트워크 카메라는 주로 도로에서 과속 차량의 번호판과 운전자를 촬영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CCTV 제조업체 아이디스의 박정웅 연구원은 “달려오는 차량의 속도를 미리 감지해 화면이 흔들리는 폭과 각도를 예상한 뒤 흔들리는 영상을 순간적으로 보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포에서 20대 여성을 납치해 태우고 가던 강호순 씨 승용차를 선명하게 찍을 수 있었던 것도 이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근 국내 CCTV 업계는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부가 기능을 추가하고 있다. 마스크나 모자로 얼굴을 가린 사람이 앞으로 다가오면 현금지급기의 작동을 멈추거나 공항에 두고 간 물건을 관제센터에 통보해 주는 등 ‘인간의 눈’을 효과적으로 대신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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