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년 만에 열린 팔미도 ‘감격 해맞이’

  • 입력 2009년 1월 2일 03시 00분


‘2009년 인천 방문의 해’를 맞아 국내 1호 등대가 있는 인천 앞바다의 팔미도가 1일 개방됐다. 106년 만에 굳게 잠갔던 빗장을 푼 팔미도 등대 앞에서 관광객 1000여 명이 해맞이를 했다. 사진 제공 인천시
‘2009년 인천 방문의 해’를 맞아 국내 1호 등대가 있는 인천 앞바다의 팔미도가 1일 개방됐다. 106년 만에 굳게 잠갔던 빗장을 푼 팔미도 등대 앞에서 관광객 1000여 명이 해맞이를 했다. 사진 제공 인천시
국내 1호 등대섬… ‘은둔의 땅’ 찾은 1000명 벅찬 함성

기축년 새해 첫날부터 군사작전지역이었던 팔미도가 일반에 개방됨에 따라 인천항 연안부두∼팔미도의 바닷길이 열렸다. 1903년 국내 최초로 등댓불을 밝힌 팔미도가 일반에 개방된 것이다.

1일 오전 6시경 인천 중구 연안부두에서 시민 1000여 명을 태운 유람선 3척이 ‘팔미도 해맞이’를 위해 출항했다. 유람선은 새벽바람과 거센 파도를 헤치고 50분 만에 인천항 남쪽으로 15.7km 떨어진 팔미도에 닿았다.

모래톱으로 연결된 두 섬이 마치 여덟 팔(八)자처럼 생겼다는 팔미도. 하얀 등대를 중심으로 팔미도 개방을 축하하는 레이저쇼가 관광객들을 맞았다. 2003년 100주년 기념행사 때를 제외하곤 일반인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았던 ‘은둔의 섬’답게 팔미도엔 소나무 소사나무 서어나무 등 울창한 산림을 비롯해 해안절벽, 백사장이 잘 보존돼 있었다.

일출을 기다리는 동안 ‘2009년 인천 방문의 해’를 축하하는 대북(큰북) 공연이 펼쳐졌다.

이어 오전 7시 45분 붉은 해가 바다를 들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바다가 다시 태양을 밀어 올려 팔미도 앞바다를 환하게 비추자 관광객들은 박수를 치며 함성을 질렀다.

시민들과 떠오르는 해를 지켜본 안상수 인천시장은 “인천 도약의 해가 될 2009년의 첫 해가 떠올랐다”며 신년 인사를 했다.

등대지기 김종환(52) 씨는 “잊혀졌던 섬에 많은 사람이 찾아와 가슴이 뿌듯하고 감개무량하다”고 기뻐했다.

팔미도에 한국 최초의 등대가 세워진 것은 1903년 6월 1일. 이후 팔미도와 등대는 한국 근대사의 영욕을 고스란히 간직해 왔다.

1904년 2월 9일 팔미도 앞바다에선 일본과 러시아 함대가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당시 러시아의 ‘바리야크함’과 ‘코레츠함’ 2척이 자폭 침몰해 러시아병사 770명이 숨졌다. 이에 따라 러시아대사관은 매년 팔미도 해상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팔미도 등대는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기점이기도 했다. 1950년 9월 14일 밤 유엔사령부 맥아더 장군의 특별명령을 받은 켈로부대 특공대원 6명이 북한군에 점령됐던 팔미도를 탈환했다. 특공대원들은 곧바로 등대의 불을 켰고 이 점등을 신호로 261척의 함대가 인천으로 진격한 것.

팔미도의 옛 등대(높이 7.9m)는 100주년을 맞은 2003년부터 불을 밝히지 않고 있다. 대신 그 옆에 위성항법보정장치(DGPS)를 갖춘 새 등대(높이 26m)가 세워졌다.

새 등대 2, 3층은 등대박물관으로 꾸며 이날 개관식을 가졌다. 세계 최초 등대인 지중해의 파로스 등대, 로마제국의 라코루나 등대 등 등대의 역사와 항로표지 발달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연안부두에서 떠나는 여객선은 매일 오전 11시, 오후 2시 두 차례 운항한다. 4월부터는 운항 횟수를 늘리고 주말 새벽엔 일출투어관광 프로그램도 마련할 예정이다.

팔미도=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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