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리와 사고]논제-결론-근거 잇는 제1의 고리 적절성

  • 입력 2008년 12월 1일 02시 59분


논증적 글을 평가할 때 적용해야 할 중요한 기준은 적절성입니다. 적절성은 논증의 주요 요소 사이의 관계를 평가할 때 사용됩니다. 논증의 주요 요소는 무엇일까요? 바로 문제, 결론, 근거입니다.

우선 문제와 결론의 관계가 적절한지를 따져야 합니다. 논의할 문제로부터 빗나간 결론을 제시하지 않았는지 검토해 보는 것입니다. 열심히 논의했지만 정작 현안을 건드리지 않고 그 문제와 무관한 논의를 했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 의아하겠지만 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범하곤 합니다.

논술에서 논제는 개념, 사실, 가치, 정책(실천) 중 한 차원을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체벌을 교육현장에 도입해야 하는가’는 체벌 제도의 도입 여부를 문제 삼는 것이므로 정책(실천) 차원의 문제입니다.

반면 ‘체벌이 정당한가’는 체벌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문제이므로 가치 차원의 문제입니다. ‘체벌이 효과가 있는가’는 실제 효과 여부를 따지는 것이니 사실 차원의 문제입니다. ‘어디까지가 체벌인가’는 체벌이란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를 문제 삼는 것이므로 개념 차원의 문제입니다.

이처럼 체벌을 소재로 하더라도 다른 차원의 물음들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체벌이 정당한가를 묻는 논제에 대해 체벌은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결론으로 제시한다면 논점 일탈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같은 소재를 다룬다고 안심하면 안 됩니다. 문제의 차원에 딱 맞게 논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자주 오류를 범하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정보사회에서 생겨난 악성 댓글 같은 현상은 해결될 수 있는가?’란 물음에 ‘해결해야만 한다’고 답한다면 역시 논점 일탈로 적절하지 않은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음은 사실 차원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문제인데 답은 가치 차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TV 토론 프로그램에는 ‘논점 일탈의 대가’들이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사회자가 제시하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얘기만 하는 정치인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적절성’이라는 예리한 칼로 혹독한 평가를 받고 거듭나야 할 사람들입니다.

다음으로 결론과 근거 사이의 적절성을 따져야 합니다. 근거의 적절성을 따지는 것은 논증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부적절한 근거란 결론을 지지하지 못하는 근거를 말합니다. 언뜻 보면 결론을 지지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딱 맞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근거의 적절성은 두 측면에서 평가해야 합니다. 우선 내용 면에서 근거가 결론을 지지할 수 있는지 따져야 합니다.

‘새 공항을 건설해야 한다. 공항이 좁은 데다 안전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라는 논증을 생각해 봅시다. 현 공항의 협소함과 안전성을 근거로 들어 새 공항 건설을 정당화하는 논증입니다. 두 근거는 적절한 근거일까요? 두 근거에 의해 결론이 정당화되고 지지될 수 있을까요?

이 논증에선 쉽게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공항을 확충하거나 안전하게 수리하는 방법으로도 공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근거만으로는 새 공항을 건설하도록 상대방을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수요 예측을 통한 장기적인 경제 효과 같은 근거가 추가로 제시돼야 확충 또는 수리가 아닌 새 공항 건설의 필요성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강도의 측면에서 근거가 결론을 정당화하는지 평가해야 합니다. 내용면에서 근거의 적절성에 큰 문제가 없더라도 강도 면에서 부적절할 경우가 있습니다.

강력한 주장에는 그에 상응하는 확실한 근거가 제시되어야 합니다. 반면 근거가 불확실할 땐 주장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약하게 해야 합니다.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A와 B는 틀림없이 연인관계다’라고 주장해도 됩니다. 근거가 있긴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면 ‘두 사람은 연인관계일 가능성이 높다’는 식으로 강도를 낮춰야 합니다.

‘한국인은 모두 부지런하다’고 주장하면 내용보다는 그 강도 때문에 주장을 정당화하기 힘듭니다. 게으른 한국인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은 대체로 부지런하다’라고 말한다면 이 주장은 무난히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근거가 결론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것이 바로 적절성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장 자체가 현실 적합성이 있는지 평가할 때도 적절성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즉, 현실에 비춰 어떤 주장이 적절한지 평가하는 것입니다. 특히 고전을 평가할 땐 이런 의미의 적절성이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됩니다.

논술은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한 글쓰기입니다. 글 자체가 아무리 정합적일지라도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절하지 않다면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논증적 글을 쓸 땐 독자에게 비판을 받지 않도록 ‘적절성’에 주의해야 합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의사소통교육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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