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3000억 원짜리 행복한 고민

  • 입력 2008년 11월 18일 18시 50분


정부로부터 건설 및 운영 허가를 받아 내년 말 완공 예정인 경북 경주시 양북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 건설현장. 사진제공=방폐장 건설처
정부로부터 건설 및 운영 허가를 받아 내년 말 완공 예정인 경북 경주시 양북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 건설현장. 사진제공=방폐장 건설처
18일 오후 경주시 사정동 서라벌문화회관 강당.

각계 대표와 시민 등 5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방폐장 특별지원금 운용방안에 대한 시민공청회'가 열렸다. 방폐장 유치에 따른 정부의 특별지원금 3000억 원과 이자를 어떻게 사용하는 게 좋을 지에 대한 토론회였다.

정부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다른 자치단체의 현실에서 보면 그저 '행복한 고민'처럼 비칠 수 있지만 경주시민에게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잘 썼다"는 평가가 경주 안팎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하자는 욕심 때문이다.

정부 지원금은 2006년 5월 경주시에 지급이 됐으나 이 가운데 1500억 원은 지난해 7월 방폐장의 실시계획 승인과 함께 경주시가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나머지 1500억 원은 내년 말 방폐장이 운영에 들어가면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원금 3000억 원에 대한 이자만 330억 원이 붙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경주시는 지금까지의 의견을 종합해 △일부를 현안 사업에 우선 사용 △상징적인 사업에 전액 사용 △종잣돈으로 장기 관리 등 세 가지 안을 제시했다.

경주시는 포항으로 이어지는 강변도로 개설 등 교통 기반을 개선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건설자재 가격 인상 등으로 가급적 빨리 공사를 시작하지 않으면 지원금의 가치가 떨어지고 정부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워 현안 사업에 우선 투입을 제시했다.

그러나 다른 의견도 적지 않았다. 방폐장이 건설되고 있는 동경주 지역 대표로 나온 신수철 씨는 "3000억 원의 사용이 문제가 아니라 경주시가 좀 더 확실한 청사진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청석에서는 "도로 건설에 너무 집중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경주시의회 3대 국책사업(방폐장 건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양성자 가속기 건설) 특별위원회 이삼룡 위원장은 "경주시가 원전을 비롯한 에너지 산업과 역사문화도시로 비전을 펼치기 위해서는 도로망 같은 기반 시설이 잘 돼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시간 가량 진행된 이날 공청회에서는 결론이 나오지 않았지만 "더 신중하게 사용하자"는 의견에는 동의했다. 어렵게 유치한 국책사업이니만큼 지원금을 경솔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뤘다.

시민 이동욱(47·동부동) 씨는 "방폐장 유치가 경주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틀림없다"며 "시민 갈등으로 비치기보다는 방폐장 유치 때 보여준 단합의 지혜를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주시는 지원금 문제를 가급적 빨리 해결한 뒤 3대 국책사업을 기반으로 역사문화에너지도시로 향한 미래를 연다는 계획이다.

방폐장 건설은 10만 드럼을 처분할 수 있는 1단계 공사가 내년 말 준공될 예정이며, 양성자 가속기는 2900억 원을 들여 2012년까지 건천읍 일대에 들어설 예정이다. 또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은 2010년까지 양북면으로 이전될 예정이다.

백상승 경주 시장은 "방폐장 유치는 경주시민의 현명한 선택이었다"며 "공청회 결과를 토대로 조만간 지원금 사용을 확정하고 3대 국책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돼 경주의 미래를 열어가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주시는 20일부터 28만 시민을 대상으로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유치를 기념하는 타임캡슐에 들어갈 물품과 자료를 모집하기로 했다. 타임캡슐은 내년 6월 '경주 시민의 날'에 황성공원 안에 묻을 계획이다.

경주=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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