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을 즐겁게” “한우물 확실히”…불황 이렇게 이긴다

  • 입력 2008년 10월 25일 03시 01분


《경기 침체가 완연해지면서 영세상인과 중소기업인들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이달 8∼17일 소상공인 110명에게 ‘경기 위축으로 인한 자금난’을 조사한 결과 89.1%는 ‘자금난이 심하다’고 답했다. 자금난의 이유로 대부분 ‘소비 위축에 따른 판매 부진 심화’(78.5%)를 꼽았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10.9%는 자금난을 겪지 않고 있다.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이때, 그들은 어떻게 수익을 내고 있을까. 동아일보 산업부는 중기중앙회와 중소기업청에 의뢰해 불황을 이겨내고 있는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들을 소개받아 그 의문을 풀어봤다.》

○ 서울 신림1동 시장

‘수요 특별세일’ 손님 끌어모아

단골에겐 쿠폰 인심 ‘Fun 쇼핑’

비가 오락가락했던 22일 오후 6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림1동 시장. 기자는 ‘비 때문에 손님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시장 통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순대국밥과 족발 가게는 손님으로 가득 차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2005년 8월 상인들은 시장 지붕 아케이드와 간판 공사를 했다. 그때부터 눈, 비로 인한 매출 감소 걱정은 안 하게 됐다. 게다가 가지런히 정리된 간판들은 ‘세련된’ 느낌을 줬다.

이곳에서 25년째 야채 장사를 하는 고성숙 씨는 “요즘 경기가 워낙 안 좋다 보니 손님들 씀씀이가 작년보다 절반은 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표정이 어둡지 않았다. 매출액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 고 씨는 요즘 하루 약 150만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고객 1인당 지출이 줄었는데 상인들의 매출은 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유입 인구’에 있었다.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큰 추가비용 없이 고객들을 신림1동 시장으로 몰리게 한 것.

당장 눈에 띄는 마케팅은 ‘수요 특별 세일’이다. 수요일마다 상품을 정해 정가보다 20∼30% 싸게 공급한다. 안 팔리는 상품을 ‘떨이’로 내놓는 게 아니라 정품을 할인 판매한다는 게 특징이다. 시장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쿠폰도 발행하고 있다. 5000원어치를 사면 1장씩 주는데 단골손님이면 더 주기도 한다. 고객 유치를 위해 간판 아래 ‘쿠폰 잘 주는 집’이라는 홍보 문구를 붙여 놓은 곳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배달 서비스를 실시하고, 매장에 앉아 TV를 보는 상인이 없다는 점도 특징이다. 번영회는 ‘TV를 끄고 손님 모시기에 주력하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진병호 신림1동 시장 번영회장은 “하루 유동인구가 과거 1만여 명에서 요즘 1만5000여 명으로 늘었다”며 “아무리 불황이 심해도 다양한 마케팅으로 고객 만족도를 높이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부산 신발업체 ‘학산’

테니스-배드민턴화 역량 집중

中企 자체 브랜드로 성공 신화

24일 찾은 부산 강서구 송정동 녹산국가산업단지. 지난해까지만 해도 공장들이 꽉 들어찼지만 이날은 드문드문 빈 공장건물이 보였다. 사거리마다 ‘공장 임대 및 매매’라고 적힌 현수막도 여럿 붙어 있었다.

경기 침체 분위기가 완연했지만 스포츠 신발 생산업체인 ‘학산’은 예외였다.

이 회사는 1988년 부산 사상구 학장동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신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산 지역에만 300여 개 신발공장이 있어 경쟁이 치열했다. 게다가 1990년대 중국 및 동남아에서 저가(低價) 신발들이 수입되면서 상대적으로 고가 제품을 생산하는 셈이 된 국산 신발 업체들은 급속히 경쟁력을 잃었다.

이원목 학산 사장은 “단순히 OEM 방식 제조만 하다가는 바이어가 좀 더 싼 공장을 찾아 떠나는 순간 끝이라고 생각해 1994년 자체 브랜드 ‘비트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이키, 아디다스 등 대형 브랜드들을 지방의 중소기업이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 그래서 이 사장은 테니스화와 배드민턴화에 특화해 역량을 집중했다. 특히 동호회를 적극 공략해 판매망을 뚫는 데 신경을 썼다.

자체 브랜드를 만들다 보니 연구개발(R&D)에 투자하게 됐고 이는 디자인과 기능성 향상으로 나타났다. OEM 계약도 더 많이 몰렸다. 선순환이었다.

김영창 부사장은 “현재 테니스화 시장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배드민턴화는 과거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일본 ‘요넥스’와 1, 2위를 다투고 있다”고 귀띔했다.

주력 상품인 비트로가 시장에 자리를 잡은 2005년 이후 학산의 매출액은 매년 약 70억 원씩 늘고 있다. 학산의 지난해 매출액은 370억 원. 올해는 지난해보다 35.1% 늘어난 500억 원의 매출액을 예상하고 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부산=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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