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스승 헐뜯는게 ‘인터넷 놀이’라니…

  • 입력 2008년 10월 10일 02시 54분


■ ‘안티교사 카페’ 100여개 성행… 무너지는 교단

교사자녀 사진까지 올리고 집단적 욕설

피해교사 “인격 모독… 교단 서기 두렵다”

서울 노원구 A중학교 정모 교사는 지난달 말 우연히 자신의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을 했다가 충격적 사실을 알게 됐다. 제자들이 그를 상대로 만든 ‘안티 카페’를 발견한 것이다.

회원 수도 20여 명으로 담임을 맡고 있는 학생들 절반이 가입한 상태였다. 카페에는 “가르치는 것도 어설픈 게 싸가지도 없다”, “영어발음 좋은 줄 아나본데 들을 때마다 토할 거 같다”는 험담이 가득했다.

은행에 다니다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뒤 임용시험을 통과해 올해 부임한 정 교사는 9일 “어렵게 교사가 됐는데 수업 때마다 아이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벌써부터 교단에 서는 게 두려워진다”고 말했다.

서울의 C대 영문과 이모 교수도 최근 중간고사 채점을 앞두고 고민이 많다. 7월에 1학기 학점을 통보하자 불만을 품은 일부 학생이 e메일과 휴대전화로 비난의 글을 보내고 교내 홈페이지 게시판에 자신을 비방하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상대평가라 A학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제한되어 있다”고 해명했지만 “기업에 특강 나가서 돈 버느라 채점을 조교에게 맡겼다”, “반반한 여학생들에게 성 상납을 받았다”는 등의 헛소문에 시달렸다.

이 교수는 “학점에 민감한 건 이해하지만 아무 근거 없는 인격 모독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 아동정책실(옛 국가청소년위원회)이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학내 구성원 안전도 인식조사를 벌인 결과 설문에 응한 교사 600여 명 중 66.7%가 “악플, 헛소문 유포, 신상정보 노출 등 온라인상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답변했다.

‘깨끗한 미디어를 위한 교사운동(교사운동)’ 등 교원단체도 제자들로부터 사이버 폭력을 당한 교사가 담임 자리를 내놓거나 교단을 떠나는 등 피해 수준이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교사운동은 특히 학생들이 카메라폰으로 찍은 교사의 언행 일부가 사진물이나 손수제작물(UCC) 등으로 편집돼 인터넷에 떠돌며 헛소문으로 번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교사 옆에 한 여학생이 넘어져 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게시됐다. 사진에는 두발단속을 하던 교사가 학생과 실랑이를 하다 쓰러뜨렸다는 설명이 달려 있었다. 해당 사진은 주요 웹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 1위에 오를 정도로 관심을 받았고, 일부 학생은 해당 교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사진에 찍힌 여학생은 하굣길에 빈혈증세로 넘어진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지만 교사는 누리꾼들로부터 ‘폭력교사’, ‘정신병자’ 등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최근에는 초중고교생 사이에서 ‘선생님을 증오하는 모임’, ‘샘∼샘∼샘이 싫어요’ 등 100개가 넘는 ‘안티 교사’ 카페가 성행하고 있다. 일부 카페는 방 제목과 키워드에 교사의 실명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교사의 얼굴뿐 아니라 자녀 사진까지 올린 뒤 욕설을 하기도 한다. 이 글을 다른 누리꾼들이 퍼나르면서 악성 루머로 번지는 등 부작용이 심각한 상황이다.

경인여대 e-비즈니스학과 진동수 교수는 “별다른 놀이문화가 없는 아이들이 익명의 놀이터가 돼버린 인터넷에서 평소 불만이 있는 교사들의 험담을 늘어놓으면서 공감대를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추진 중인 인터넷 윤리교육을 통해 악플의 폭력성을 어려서부터 각인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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