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허진석]돈 먹는 영어마을 중복투자는 이제 그만

  • 입력 2008년 9월 6일 02시 58분


해외연수를 가지 않고도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하겠다며 야심차게 시작한 영어마을 사업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수도권에 위치해 찾는 사람이 많은 경기영어마을(파주 안산)은 작년 한 해 77억 원의 적자를 냈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 18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21개 영어마을에서 모두 212억4500만 원의 적자를 봤다. 국무총리실이 5일 ‘지방자치단체 영어마을 조성 및 운영실태’ 평가 결과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들 영어마을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38%에 그쳤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자체들은 2011년까지 2080억 원을 투자해 영어마을 23개를 추가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영어마을의 적자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지자체들이 주민 자녀들의 영어 교육을 위해 투자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지방정부의 교육사업이 많은 수익을 내면 공공성은 그만큼 훼손될 수도 있다.

문제는 효율성이다.

우선 지자체마다 고유 사업으로 진행하다 보니 국가 전체적으로는 중복 투자될 소지가 다분하다. 지자체는 자체 행정구역을 넘어선 교육 수요와 지리적 분산 등을 고려하기가 쉽지 않다.

단적인 예로 인천 서구에는 최대 4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영어마을이 직선거리로 800m 내에 2개나 있다. 하나는 기초자치단체인 인천 서구가 지었고 다른 하나는 광역자치단체인 인천시가 만든 것이다.

또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학교 내에 만드는 영어체험학습센터와 중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04년 시작된 영어체험학습센터는 현재 전국 199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올해는 무려 1730개 학교에 새로 설치된다고 한다.

특히 해외연수 수요를 잡겠다던 영어마을에 일일체험 고객만 몰리는 것은 영어마을의 설립 취지를 무색케 한다. 작년 영어마을의 연 이용인원 43만7420명 중 57%인 24만9347명이 파주 영어마을의 일일체험 참여자였다.

총리실 당국자는 “영어마을 프로그램이 단기 프로그램 위주로 짜여 실질적인 해외연수 수요층을 흡수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잘사는 수도권 위주로 영어마을이 몰리는 현실도 풀어야 할 숙제다. 장기연수 수요를 충족시킬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하고 적자도 이어진다면 이 사업이 오래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좋은 교육시설을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경영 효율성도 제대로 뒷받침돼야 한다.

허진석 정치부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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