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위원장들 ‘머리띠’ 풀면 ‘금배지’ 따러…

  • 입력 2008년 8월 6일 19시 53분


노동조합 위원장 4명 중 1명은 위원장 임기를 마친 뒤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동아일보가 6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산별노조 등 노조 상급단체와 현대자동차 서울메트로 LG전자 현대중공업 KT 등 대형 사업장 노조 위원장 146명을 대상으로 위원장 임기 이후 경력을 조사한 결과다.

146명 가운데 35명(24%)은 국회의원, 정당인 등 정치권에 진출했다. 33명(23%)은 노조 상급단체, 기타 노동관련 단체 등 노동운동을 이어갔고 38명(26%)은 현업에 복귀했다. 나머지 40명(27%)은 개인사업, 퇴사, 확인불가 등으로 분류됐다.

한노총과 민노총 등 노조 상급단체와 대형 사업장 노조 위원장들의 정치권 진출이 두드러짐에 따라 일각에선 이들이 신분 상승 코스로 위원장 신분을 활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러브콜 받는 노총 위원장

한노총은 초대~직전 노조위원장 14명 중 4명을 국회의원, 1명을 노동부 장관으로 배출했다. 4명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거나 비례대표를 신청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퇴임 이후 활동을 확인할 수 없는 초대와 2대 위원장을 빼면 노동운동을 이어간 사람은 3명에 불과했다.

노동계 수장인 한노총 위원장이 정계에 진출한 것은 3대 이찬혁 위원장부터다. 이 위원장은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 영등포구에 출마해 11,12대 국회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12대 국회의원 이후에는 한국전력공사와 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이사장을 맡았다.

4대 최용수 위원장은 이 위원장 보다 조금 일찍 국회에 진출했다. 8·9대 국회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 후보로 금배지를 달았다.

정한주 9대 위원장은 5공화국에서 노동부 장관을 거쳐 농어촌개발공사와 농수산물유통공사, 학교법인 인항학원의 이사장을 역임했다.

김동인 11,12대 위원장은 전국구로 13대 국회에 진출했고 박인상 전 위원장은 비례대표 추천을 받아 16대 국회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당선됐다.

이용득 전 위원장은 18대에서 한나라당에 비례대표를 신청했다가 탈락했다.

한노총 소속 체신노조 위원장이었던 권중동 전 위원장은 민주공화당 전국구 후보로 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7,8대 중앙노동위원장을 거쳤다. 그는 제5공화국에서 마지막 노동청장과 초대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다.

한노총의 라이벌인 민노총은 초대~직전 노조위원장 5명 모두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권영길 초대 위원장은 17,18대 고향인 경남 창원에서 당선됐다. 단병호 전 위원장은 17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이갑용 2대 위원장은 2002년 7월 울산시 동구청장에 당선됐다.

퇴임 이후 고교 국어교사로 돌아간 이수호 5대 위원장은 지난달 민노당 최고위원을 맡았다. 조준호 위원장은 18대 총선에서 경기 화성갑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노조 측은 출신 인사들을 정치권에 보내서 간접적으로 자신들의 정책을 실현할 수 있고, 정치권은 노동계의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교류가 잦다"고 분석했다.

김동원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노조위원장의 정계 진출은 노동계 목소리를 정당하게 정치권에 전달할 수 있어서 장기적으로 노동운동에 안정을 가져오지만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 위원장들은 '위원장' 자리를 이용하는 등 '어용(御用)'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 국회의원 절반은 보수 정당으로

한국퇴직자연합(한국노총 출신 단체)이 초대~18대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을 조사한 결과, 69명(연인원임·재선은 중복계산)이 국회의원에 당선했다. 지역구 의원은 57명, 전국구는 12명이었다. 재선 이상을 빼면 실질적으로 노동계 출신은 인원수로는 49명이 금배지를 달았다.

자유당,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한나라당 등 보수 정당으로 옮긴 위원장 출신은 34명(49%)이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진보 정당은 21명(31%), 무소속과 기타 정당 소속은 14명(20%)이었다.

노동계 출신 의원들은 1,2공화국에는 여야 의원들이 절반씩 비슷한 분포를 보였으나 3,4공화국(7~10대)에는 노동계 출신 야당 국회의원이 없었다.

11,12대에는 6명 중 5명이 민주정의당 문패로 금배지를 달았고 13~15대는 15명 중 집권당인 민자당 출신이 6명에 불과했다. 16대는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 6명 중 집권 민주당 소속이 4명, 한나라당은 2명에 그쳤다. 17대 국회에는 민주노동당의 진출이 돋보여 9명 중 5명을 차지했다. 18대는 8명 중 5명이 여당인 한나라당 소속이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15~17대 의원 출신이다. 방용석 전 원풍모방 노조지부장은 15대 국회의원을 거쳐 김대중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맡았다.

조성준 전 노사정위원장은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과 고려대 법대 동기 동창으로 한국노총 정책실장을 거쳐 15,16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노조위원장들의 이색 행보

별세한 조창화 전 동국대 경영대학원장은 영월발전소 노조위원장 출신. 1961년 한국전력이 탄생하면서 전국 전력발전노조 초대 위원장을 지냈다.

낮에는 노조활동을 하면서도 밤엔 책을 놓지 않은 조 전 원장은 1966년 한노총 중앙교육원장을 거쳐 1968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로 취임했다. 노동현장에서 몸소 체험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강의로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김성진 전 숭실대 총장도 전력노조 위원장 출신이다.

현대중공업 노조 위원장들은 신자유주의적인 노동단체로 대거 옮겼다.

민노총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권용목 현대중공업 초대 위원장은 2006년 9월 "자본을 적으로 보지 말고 동반자로 인식해야 한다"며 뉴라이트신노동연합 대표를 맡았다. 이형건, 이원건 등 전직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도 여기에 합류했다.

금융노조는 사무직 노조라서 노동운동 초창기에는 노동계 내부에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으나 금융계, 정치권, 노동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면서 상급단체와 정계 진출이 두드러졌다.

윤홍직 전 위원장이 7대 한국노총 사무총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이남순, 이용득 씨가 한노총 위원장을 맡았다.

이유종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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