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교육 생산성과 서열화

  • 입력 2008년 8월 2일 02시 56분


선진국의 교육정책이 급속하게 경쟁 위주로 재편되고 있어 우리로서는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다. 영국 정부는 교육의 생산성까지 산출하고 있다. 투입 예산 대비 학생들의 시험 성적을 비교하는 이 계산법에 따르면 2006년 영국의 교육생산성은 2000년에 비해 0.7% 감소했다. 교육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 한국에서 만약 이런 조사를 실시했다면 ‘무슨 경박한 짓이냐’며 큰 반발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불만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지 않을까 싶다.

▷국내 교육에 실망한 우리 학부모들이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는 것처럼 교육의 국가 간 이동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영국은 ‘초(超)국가적 교육수준 관리’에 나서고 있다. ‘영국에서 1등’보다는 세계적으로 어느 수준에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영국은 교육 관련 평가에 외국 전문가를 참여시키고 있다. 이들 선진국의 목표는 잘하는 학생들은 더 잘하도록 하고, 못하는 학생은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다.

▷한국에선 철지난 서열화 논쟁이 불붙고 있다. 학교 간 경쟁을 강조하는 서울시교육감이 당선된 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공개 계획을 내놓았다.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에서 학력평가 시험을 치른 뒤 학교별 성적을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바로 ‘학교를 서열화하자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서열화 반대’ 주장은 어느 학교가 잘하고 못하는지 눈감고 넘어가자는 얘기다. 학교 간 경쟁으로 가장 이익을 보는 집단이 누구이고, 피해를 보는 집단이 누구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학교별 성적이 공개되면 교사와 학교는 피곤해진다. 다른 지역, 다른 학교와 당장 비교돼 지역사회와 학부모로부터 개선 압력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교원단체와 교육당국도 편할 리 없다. 학력 격차는 교육의 실패를 뜻하기 때문에 교원평가제 도입 같은 공교육 개혁 요구에 직면할 것이다. ‘서열화 반대’를 외치는 교사단체들은 이런 이해관계에 연결돼 있다. 서열화 논쟁이 순수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반면에 학생에겐 장기적으로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 선진국들은 맹렬히 달리고 있는데 우리만 멈춰 서서 이념형 논쟁만 하며 지새울 건가.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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