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다중지능

  • 입력 2008년 7월 14일 02시 56분


‘시험 사업’은 날로 번창 중이다. TOEIC, TOEFL과 같은 영어시험에서부터 한자, 역사 검정 시험까지. 숫자로 사람들을 한 줄로 세우는 평가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과연 성적 좋은 사람이 실력도 뛰어나다 할 수 있을까? 만약 성적이 능력을 꼭 집어 보여준다면 ‘학벌사회’ 운운하는 비판은 사라질 것이다. 좋은 실력으로 우수한 학교에 가서 인정받는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문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자격 고사 등이 꼭 실력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뛰어난 법률 감각을 지니고도 영어 시험을 통과 못해 법관이 못 된다면, 화타(華陀)가 울고 갈 만큼 의술이 뛰어남에도 면허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의사가 될 수 없다면 자격시험이 과연 공정하고 객관적이라 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인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한다. ‘시험 사업’의 원조는 지능검사다. 지능검사는 사람들의 능력치를 숫자로 보여준다. 멘사(MENSA)란 세계에서 지능이 가장 뛰어난 상위 2% 안에 드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하지만 가드너에 따르면 멘사 회원 가운데 대다수는 그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시험 성적이 곧 능력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람의 능력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을까? 가드너는 한 줄로 사람들을 세우려 하지 않는다. 그는 7개의 지능을 내놓는다. 지능은 음악지능, 신체운동지능, 논리수학지능, 언어지능, 공간지능, 인간친화지능, 자기성찰지능으로 나누어진다. 필요하다면 지능을 더욱 잘게 나눌 수도 있다. 가드너는 여기에 ‘실존지능’까지도 덧붙였다. 이 지능들은 각각 독립된 능력이다.

지능을 잘게 쪼게 놓으면 교육 방법도 크게 달라진다. 지금의 학교에서는 논리수학지능과 언어지능이 높은 학생이 유리하다. 일단 모든 문제와 해설이 다 언어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가드너는 떨어지는 듯 보이는 아이들에게 이런 방법을 써보라고 권한다. 기계를 잘 다루는 학생이 글을 익히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해보자. 그렇다면 국어책을 달달 읽히지 말고 ‘자전거 사용 설명서’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가르쳐 보라. 컴퓨터는 잘하는 데 수학은 유난히 못한다면 프로그래머에게 프로그램을 짜는 데 필요한 숫자를 익히도록 하자.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뛰어난 지능이 있다. 그 지능을 제대로 틔우도록 교육하면 학습 효과는 훨씬 높아진다.

아울러 가드너는 ‘시험’을 보지 말고 ‘평가’를 하라고 힘주어 말한다. 시를 잘 쓰는지를 과연 오지 선다형 문제로 가려낼 수 있을까? 시를 제법 쓰는지 가늠하려면 직접 써보게 하면 된다. 지금의 시험은 삶의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 가드너가 시험에 대해 경기를 일으키는 이유다.

가드너는 제대로 된 ‘평가’ 방법으로 옛 기술자들의 예를 든다. 기술을 새로 배우는 사람들, 즉 도제(徒弟)들은 기술자들을 도우며 일을 익혔다. 도제가 얼마나 일을 잘 배우는지를 알기 위해 ‘시험’을 치를 필요가 없었다. 도제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기술자가 매순간 ‘평가’하기 때문이다. 도제가 독립할 만큼 기술을 갖추었는지를 가리는 시험 역시 필요 없었다. 그가 만든 작품이 곧 실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교육도 도제 교육과 같아야 한다. 삶과 교육이, 배움과 평가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가드너는 포트폴리오와 같이 평가와 교육이 한데 합쳐진 교육과정을 강조한다.

‘시험 산업’은 우리나라에서도 날로 번창 중이다. 한국 유학생 가운데는 성적은 좋지만 실력은 별로라는 소리를 듣는 이들이 많다. 가드너의 ‘다중지능’을 읽으며 왜 그런지를 곰곰이 반성할 일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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