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통계로 세상읽기]이사를 몇 번 가야 우리집이 생길까?

  • 입력 2008년 6월 23일 02시 57분


이 시는 다산 정약용의 고시(古詩) 27수 중 하나다. 자신의 집을 갖지 못하는 제비의 서러운 처지에서,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는 요즘도 자기 집이 없는 서민들의 애환을 읽어낸다면 너무 지나친 해석일까?

2005년 말 기준 한국의 주택보급률(가구 수 대비 주택 수)은 105.9%다. 이 중 자기가 소유한 집에서 사는 비율은 55.6%에 그친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다고 해도 국민의 반 정도는 자기 집을 못 가진 무주택자고, 나머지 반 정도는 두 채 이상의 주택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1995년부터 2005년 사이에 주택보급률은 19.9%포인트(86.0%→105.9%) 증가한 반면, 자가거주율(자기 집에서 사는 거주 비율)은 2.3%포인트(53.3%→55.6%) 증가에 그쳤다.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들만 늘어난 것이다.

무주택자들은 전세나 월세를 살면서 이사를 자주 해야 한다. 2004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 무주택자들은 결혼하고 나서 평균 10년 1개월 정도 걸려 자기 집을 마련한다. 전세 계약이 주로 2년 단위로 이뤄지는 것을 고려하면 평균 다섯 번 정도(실제 통계로는 4.7회) 이사해야 자기 집을 갖는 셈이다. 집을 구하는 데 드는 비용이나 이사 비용까지 합치면 다섯 번의 이사를 하며 서민들이 치러야 하는 경제적 비용은 만만치 않다. 아이들의 학교 문제 등 다른 문제까지 고려하면 다섯 번의 이사는 참으로 힘든 일이다. 게다가 집값과 전세금은 계속해서 오른다. 어쩌면 집 없는 서민들의 서러움은 집 없는 제비의 그것보다 더할지도 모른다.

전세금이나 월세를 걱정하지 않고 자기 집처럼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영구 임대’나 ‘장기 임대’처럼 집 없는 사람들이 적은 돈으로 자기 집처럼 오래 살 수 있는 공공주택 제도가 한 방법이다. 그러나 공공주택은 우리나라 주택의 3%에 불과하다. 외국의 경우는 적게는 15%(포르투갈)에서 많게는 45%(네덜란드)나 된다. 주택을 꼭 소유해야 한다는 우리의 주택 문화가 공공주택 제도를 활성화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왜 주택을 꼭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집’과 같은 부동산(不動産·토지 및 그 정착물)에 투자함으로써 재산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종 부동산을 ‘투자’가 아닌 ‘투기’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투기’란 시세 변동을 이용하여 큰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매매 행위다. 아파트를 비롯한 주택을 사서 조금 가지고 있다가 가격이 오르면 재빨리 팔아 그 차익을 얻는 것이 한 예다. 이러한 투기는 물가 상승보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더 크게 나타날 때 일어난다. 투기의 결과로 부동산 가격은 자꾸 오르게 된다.

부동산 가격이 터무니없이 올라갈수록 부동산을 많이 가진 부자들은 가만히 앉아 큰돈을 번다. 그러나 집 없는 사람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이 점점 멀어지고 심지어는 일할 의욕마저 잃어버린다. ‘누구는 가지고 있는 집으로 몇 천만 원, 몇 억 원을 쉽게 버는데 열심히 일해서 몇 만 원 버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개인이 자기 돈으로 자유롭게 집을 사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물과 공기처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면서도 한정된 자원인 집이 투기의 대상이 된다면, 결국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갈등이 심해지고 많은 사람이 일할 의욕을 잃게 될 것이다. 결국에는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 모두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집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곳이다’라는 소박한 생각이 통용되는 때는 언제나 찾아올까?

구정화 경인교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