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켜지면 한숨 짓는 전경들

  • 입력 2008년 5월 30일 02시 58분


29일 오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출동을 앞둔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단 제1기동대 2중대 소속 대원들이 피곤한 표정으로 버스에 앉아 있다. 신원건  기자
29일 오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출동을 앞둔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단 제1기동대 2중대 소속 대원들이 피곤한 표정으로 버스에 앉아 있다. 신원건 기자
연이은 심야시위에 잠 제대로 못자 ‘파김치’

시위저지 과정 자칫 불상사 생길까 노심초사

“긴급 상황, 긴급 상황…. 전 중대원은 1층 주차장으로 집합.”

서울 중구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단 제1기동대 2중대. 29일 오후 3시 비상벨이 울렸다.

10여 분 뒤 모든 대원이 전경차량 안에 집결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원들은 두꺼운 진압복을 입었다. 팔꿈치와 정강이에 보호대까지 착용한 대원들에게 버스 안 좌석은 다리를 뻗기 힘들 만큼 비좁았다.

섭씨 30도까지 치솟은 기온에 출발 전부터 대원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 뒤바뀐 낮과 밤

서울 종로구 세종로 교보빌딩을 향하는 버스 안. 2중대장 박재영 경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첫째, 절대 기죽지 않는다. 둘째, 목소리 크게 한다. 셋째, 무리하게 추격하지 않는다. 넷째, 절대 방패로 찍지 않는다. 알겠나? 복창!”

박 경감은 “대원들이 더운 날씨에 피로가 쌓이다 보면 시위대의 자극에 흥분할 가능성이 있다”며 “오늘은 시위가 특히 격해질 우려가 있어 정신교육을 강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부터 촛불집회가 거리시위로 번지면서 대원들의 하루는 낮과 밤이 뒤바뀌었다.

매일 오후 4시경 현장으로 출동해 새벽까지 시위대를 통제한 뒤 귀대하면 다음 날 오전 4, 5시다. 잠시 눈을 붙인 뒤 오전 11시에 일어나면 또다시 출동 준비를 해야 한다.

식사도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만 숙소에서 먹는다. 현장에 출동해 버스 안에서 먹는 저녁은 언제 출동할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 1, 2분 만에 끝낸다.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신원건 기자

○ 여성-학생 통제가 더 힘들어

촛불집회에 여성과 중고교생의 참여가 많아지면서 대원들은 진압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도로로 밀려 나오는 시위대를 방패로 저지하는 과정에서 일부 여성 참가자가 엉덩이나 가슴을 만졌다며 항의하기 때문이다. 또 진압 과정에서 학생들이 다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비난 여론이 일 수 있다는 것도 걱정거리다.

1기동대 2중대 윤모(22) 상경은 “방패 안에 손이 들어가 있어 물리적으로 만질 수 없는 상황인데도 순식간에 성추행범으로 몰려 남성 참가자들한테 폭언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윤 상경은 “차라리 노동운동단체 같은 과격한 시위대라면 우리도 진압봉 등을 사용해 단호하게 통제할 수 있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 “우리도 사람이다”

28일 밤 촛불집회 현장에 나간 1기동대 2중대 김모(23) 수경은 제대를 3주 앞두고 발목을 삐었다. 동대문운동장 부근에서 거리행진을 벌이던 시위대를 통제하려 급하게 버스에서 뛰어내리다 발을 헛디뎠다.

일부 운전자는 도로 한복판에 멈춰선 전경버스를 향해 “너희들이 뭔데 밤길을 함부로 막느냐”며 항의했다.

김 수경은 “군대 가면 몸 성히 제대하는 게 가장 중요하듯 우리에게도 건강한 몸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는 부모님이 있다”며 “전경도 사람인데 시위대와 마주 서 있으면 공격해오지 않을까 두렵지 않을 리가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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