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벼랑 끝의 아이들]<下>공부할 권리 뺏는 부모들

  • 입력 2008년 5월 28일 03시 01분


“학교 가고 싶은데”… 부모가 막고 선 교문

《“여자가 배워서 뭐 해요. 중학교까지 마쳤으면 됐지 고등학교는 무슨….” 지난해 8월 노경숙(가명·16) 양의 진학상담 때 어머니 박모(41) 씨의 이 말에 담임교사는 기가 찼다. 학급 부회장으로 성적도 반에서 2, 3등을 다투는 경숙이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싶지만 엄마 옆에서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담임교사는 “경숙이보다 성적이 뒤지는 경우도 부모들이 특목고 보내달라고 안달인데 고등학교조차 안 보내겠다고 하니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 가정형편 탓에 실업계 고교로

4년 전 이혼한 박 씨는 세탁소 한쪽에서 경숙이를 키웠다. 세탁물 더미 옆 6.6m² 남짓한 시멘트 바닥에서 경숙이는 돗자리를 깔고 지냈다. 겨울엔 보일러도 없어 담요 하나로 추위를 이겨내야 했다.

하지만 박 씨는 일이 끝나면 인근 아파트에서 동거남과 함께 지냈다.

그동안 설움을 묵묵히 견뎌냈지만 고등학교에 보낼 수 없다는 엄마의 말에 경숙이는 끝내 집을 나왔다. 이후 박 씨는 그룹 홈에서 지내는 경숙이를 한 번도 찾지 않았다.

경숙이의 꿈을 위해 결국 선생님들이 나섰다. 인근 상업고교에 추천서를 보내 수업료 전액을 지원 받는 조건으로 경숙이를 입학시켰다.

그래도 경숙이는 걱정이 많다. 실업계 고교라 대입 준비를 하려면 학원에 다녀야 하지만 학원비를 감당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머물고 있는 그룹 홈도 18세가 되면 나와야 한다.

○ 학교 문턱 넘어 본 적 없는 아이들

송정민(가명·15·여) 용민(가명·13) 남매는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아버지 송모 씨가 2006년 뒤늦게 아이들을 호적에 올리는 바람에 취학 시기를 놓쳤다. 송 씨는 “검정고시를 보면 된다”며 아직도 남매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학력 수준은 중고교 검정고시에 응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정민이는 간단한 덧셈뺄셈만 하는 수준이고 용민이는 한글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 아내가 가출한 뒤 일용직으로 일하며 홀로 아이들을 키워 온 송 씨는 아이들을 교육시킬 여력이 없다.

정민이는 게임방에서, 용민이는 방에 틀어박혀 TV를 보며 하루를 보낸다. 오랜 기간 폐쇄적으로 살아온 남매는 외부인을 보면 극도로 경계하며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사회복지사 김미선 씨는 “아이들이 학교를 안 다니는 동안 학습능력과 정서 발달이 모두 정체돼 검정고시로 학교에 간다고 해도 또래들과 어울리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 사교육 열풍 속 증가하는 미취학 아동

가난과 방임으로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는 전국적으로 약 2500명(2005년 기준).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갈수록 높아지지만 미취학 아동은 2000년과 비교해 5년 사이 2배로 늘었다.

굿네이버스 이호균 부회장은 “학교에서 마음껏 공부할 권리를 박탈당하면 공평한 출발선상에 서지 못하고 뒤처진 채로 삶을 시작한다”며 “그런 아동들은 어른이 돼도 빈곤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2세들의 발달권마저 지켜주지 못하는 악순환을 겪는다”고 말했다.

발달권을 침해당한 어린이를 후원하려면 굿네이버스 홈페이지(www.goodneighbors.org)나 전화(02-6717-4000)로 문의하면 된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관련기사] <上> 절대빈곤 속 생존권 위협

[관련기사] <中> ‘학대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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