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에반게리온:서(序)

  • 입력 2008년 5월 26일 02시 58분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서(序)’(이하 ‘에반게리온’)는 1995년 일본에서 TV로 방영된 26부작 만화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극장용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4부작 중 첫 번째 편이지요. 세상에, 이런 고독하고 묵시론적인 애니메이션이 또 있을까요. 이 영화는 혼연일체가 된 주인공(조종사)과 로봇이 나쁜 로봇 무리에 맞서 싸워 지구를 지킨다는 점에서 일견 여느 로봇 애니메이션들과 흡사해 보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너무나 다릅니다. 악당 로봇들을 하나 둘 쳐부수면 쳐부술수록 주인공은 그만큼 더 지독한 쓸쓸함에 몸서리치니까 말이죠. 우리를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인류를 지키는 에반게리온이 절대 선(善)인지, ‘사도’라 불리는 상대 로봇들이 부동의 악(惡)인지도 잘라 말할 수 없단 점입니다.》

‘선과 악,구원과 고통의 동거’

인간 존재의 우울한 숙명

[1] 스토리라인

‘세컨드 임팩트’(정체를 알 수 없는 재앙의 일종)의 충격으로 인류의 절반이 사망하고 15년이 흐릅니다. 잇따라 나타나는 ‘사도’들은 가공할 무기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합니다.

14세 소년 ‘신지’는 어느 날 특무기관 ‘네르프’로 불려가 생체병기 에반게리온의 파일럿이 될 것을 요구받습니다. 신지는 네르프의 사령관인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파일럿이 됩니다. 사도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신지. 하지만 웬일인지 아버지는 신지를 인정하기는커녕 더 가혹하게 몰아붙일 뿐입니다. 외로움에 사무치는 신지. 그는 왜 하필 자신이 선택되었는지, 자신에게 과연 인류를 구해낼 엄청난 능력이 있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합니다. 이때 강력한 여섯 번째 사도가 출현합니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에반게리온’에는 성서와 신화에 뿌리를 둔 복잡한 비유와 상징들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습니다. 몇 번을 반복해 보아도 머릿속엔 더 많은 수수께끼만 상처처럼 남겨질 뿐이지요.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근원적인 질문 세 가지를 스스로에게 던져봄으로써 영화가 숨겨놓은 비밀스러운 메시지의 정체를 한 꺼풀 벗겨볼 수 있으니까요. 자, 그럼 시작할까요?

①에반게리온의 정체는?=에반게리온이 파일럿의 조종에 따라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로봇이 아니란 사실에 주목하세요. 에반게리온은 생체병기입니다. 조종사와의 정신적 교감을 통해 움직이면서도 때론 누구도 못 말립니다. 알 수 없는 고통에 발작을 일으키면서 제어불능 상태가 되기도 하지요. 어둡고 침울한 에반게리온. 그는 어찌 보면 사도보다 더 괴물 같은 존재입니다.

이 같은 특성으로 추정컨대, 혹시 에반게리온은 우리 인류의 원죄가 집약된 상징적 존재가 아닐까요? 에반게리온(Evangelion). ‘복음’ 혹은 ‘절대적 진리’란 뜻을 가진 단어 ‘에반겔(Evangel)’에서 유래한 이 생체병기의 이름을 한 번 뜯어보세요. ‘Eva’라는 첫 세 글자는 성경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여성인 ‘이브(Eve)’를 연상케 하지요? 선악과를 따먹어 인류에게 원죄라는 저주스러운 숙명을 짊어지게 만든 장본인, 이브 말이지요.

너무 ‘오버’한 해석이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에반게리온이 여성 혹은 모태(母胎)의 상징이란 결정적 증거가 있어요. 주인공 신지가 에반게리온의 조종석에 들어가 앉는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갑자기 ‘엔트리플러그’라고 하는 액체가 차오르고, 이 액체 한가운데에 둥둥 뜬 신지는 액체로부터 산소를 공급받으면서 에반게리온과 교감합니다. 결국 에반게리온은 ‘인류의 어머니’, 엔트리플러그는 아기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생명의 기원인 ‘양수(羊水)’, 그리고 신지는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신성한 아기’나 다름 없지요.

②사도의 정체는?=일단 ‘사도(使徒)’란 이름에서 우리는 ‘예수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뽑은 열두 제자’를 떠올리게 됩니다. 아니, 말도 안 된다고요? 어찌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악마적 존재들이 사도란 이름을 가질 수 있느냐고요? 그럼 이런 질문을 던져보죠. 사도란 정녕 악마적 무리일까요?

고정관념을 벗어던지면 사도는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사도가 가공할 공격을 퍼붓는 까닭은 인류를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를 ‘징벌’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보세요. 하느님이 지구에 대홍수를 내린 건 인간들을 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락에 빠진 인류를 ‘심판’하기 위해서였잖아요? 이 같은 맥락으로 볼 때 영화 속 사도는 죄악으로 얼룩진 인간을 단죄하려고 하늘이 보낸 메신저일 수도 있습니다. 사도들이 파괴될 때 십자가 모양의 안타까운 빛을 남기고 사라지는 모습도 이런 해석에 대한 논리적 근거가 되지요.

이뿐 아닙니다. 사도는 어떤 절대적인 대상에 대한 절묘한 알레고리(비유)일 수도 있어요. 영화 속 사도의 모습을 볼까요? 사도는 △그 정체가 무엇인지 △언제 출현하는지 △왜 인류의 목숨을 빼앗는지에 대해 영화는 일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알 수 없는 순간, 알 수 없는 이유로 나타나,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인간을 공격하는, 알 수 없는 존재들일 뿐이지요. 바로 이런 점에서 사도는 대재앙에 대한 은유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몰아닥쳐 인류를 공격하는 홍수나 대지진, 혹한, 폭염 같은 자연재해 말이지요.

③신지의 정체는?=신지는 미칠 듯한 고뇌에 시달립니다. ‘왜 하필 내가 선택된 거지?’ ‘도대체 난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내가 목숨을 걸고 이 일을 해낸다고 한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신지를 괴롭히는 이런 질문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뜻밖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신지는 아주 특별한 존재인 동시에 알고 보면 아주 보편적인 존재란 사실을 말이지요.

생각해 보세요. 신지가 혼잣말처럼 되뇌는 질문들은 우리 모두가 성장의 고통을 겪으면서 한 번쯤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통과의례 같은 물음입니다. 누구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회피하고픈 마음에 ‘하필 내가 왜?’ 하고 자기 합리화를 해보기도 하고, 아버지라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두려움(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을 딛고 일어나면서 강하고 책임 있는 존재로 담금질되지요. 결국 영화는 신지라는 미약한 소년이 특별한 운명을 짊어지고 가는 과정을 통해 인류의 성장사를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중요한 건, 이 영화는 신지라는 ‘개인’보단 인간들이 맺는 ‘관계’ 자체에 대해 발언하고자 한다는 점입니다. 특무기관 네르프의 기술책임자인 ‘리츠코’와 신지의 직속상관인 ‘마사토’, 두 여성이 신지를 두고 나누는 철학적인 대화에 귀를 기울여보죠.

“‘바늘두더지 딜레마’라고 알아? 두더지들은 자신의 온기를 전하기 위해 상대에게 다가갈수록 외려 몸에 난 바늘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만 입힐 뿐이지. 신지도 마음 속 어딘가에서 그 아픔을 두려워해. 그래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거야.”(리츠코)

“조만간 깨닫겠지.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면서 서로가 그다지 상처를 입지 않는 거리를 찾아내는 과정이란 사실을.”(마사토)

어쩌면 우리 모두는 신지처럼 바늘두더지들인지 모릅니다. 서로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내 마음이 입게 될 상처를 두려워하면서 지레 주저하게 되는 안타까운 존재들 말입니다. 내면의 두려움을 딛고 일어난 신지가 구원한 것은 인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안의 두려움과 맞서 싸워 마음의 벽을 허물 때 우리는 진정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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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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