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명화, 생각의 캔버스]‘모나리자의 초상화’

  • 입력 2008년 4월 28일 02시 59분


장신구도 없다… 엄숙한 표정도 아니다…

당시 유행을 거부한

모나리자의 초상화

뭘 표현하려 했을까

《인류의 미술사를 빛낸 명화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하면서 사고의 지평을 넓혀줍니다.

명화 속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요?

그 비밀을 통해 우린 어떤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에 이를 수 있을까요?

오늘부터 서양미술사학자 노성두 박사가 쓰는 ‘명화로 생각하기’를 격주로 싣습니다.》

? 여인의 초상을 담은 두 그림 사이에는 어떤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을 한 점만 꼽으라고 한다면 우리는 주저 없이 ‘모나리자’를 머리에 떠올립니다. 모나리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어느 피렌체 시민의 초상화지요. 이 그림은 유명한 만큼 또 유난히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고 해요. 박물관에서 도난을 당하기도 하고, 모조품이 진짜인 것처럼 나돌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모나리자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있어요. 그런 일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말이지요.

실제로 모나리자의 초상을 들여다보면 입가의 미소가 일품이에요. 얼굴에 주름을 잡으면서 요란하게 터뜨리는 웃음이 아니라, 상대방의 눈을 마주보면서 알 듯 모를 듯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으니 말이지요.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에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모나리자의 미소는 지상보다는 천상에 속한 것 같다”며 화가 다빈치의 기막힌 솜씨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답니다.

다빈치가 활동하던 시기에 다른 화가들도 초상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주로 왕족과 귀족, 그리고 성직자나 부유한 시민들이 화가들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주문했어요.

초상화는 알고 보면 참 신기한 구석이 있어요. 초상화 속의 주인공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주름살이 생기거나 머리카락이 세지 않아요. 당연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이지만, 옛날 사람들은 회화예술이 시간을 붙드는 기적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이유에서 초상화는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 후손들이 앞선 시대에 살았던 조상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또 그들의 위업을 기리게 하는 좋은 수단으로 인정받았어요.

초상화의 모델이 되는 사람들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초상화를 그릴 때는 목걸이, 귀고리, 반지, 팔찌, 머리장식 등 온갖 장신구를 주렁주렁 걸치고 나와서 위엄 있는 포즈를 취했어요. 자신의 재력과 지위와 가문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인데 이럴 때 금붙이와 보석을 걸치지 않으면 언제 또 꺼내서 쓰겠어, 이런 생각들을 했어요.

또 초상화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얼굴이 가장 중요하지요. 그래서 평소에는 신나게 웃고 울고 수다를 떨다가도 화가 앞에 가서는 다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한껏 진지하고 경건한 표정을 짓곤 했지요. 수백 년 뒤에 이름도 모를 후손들이 모여서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가 알고 보니 저렇게 수다쟁이 ‘푼수’였구나 하고 생각하면 곤란할 테니까요. 간혹 진지한 표정을 짓다 못해 얼굴이 경직되거나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이 나오기도 했어요. 그런 것을 보면 모나리자가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은 초상화의 역사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큰 변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모나리자는 같은 시대 다른 초상화의 주인공들과는 다르게 장신구를 하나도 걸치고 있지 않아요. 르네상스 여인 초상화 가운데 보석이나 금붙이가 하나도 없는 작품은 모나리자가 유일하답니다. 이건 더 이상하네요. 모나리자는 그 당시에 꽤 멋을 아는 축이었던 것 같아요. 얼굴에 눈썹이 없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뢴트겐(엑스선) 사진에도 눈썹이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후대의 다른 화가가 덧칠을 해서 지운 것이 아니고 다빈치가 처음부터 눈썹을 그리지 않은 게 분명해요.

1528년에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가 쓴 ‘궁정인’이라는 책을 보면, 피렌체 여자들 가운데 멋쟁이들은 너나없이 눈썹을 뽑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요. 사람들은 여자들이 눈썹을 뽑으면 이마가 한결 높아 보이고 아울러 고상한 기품이 흐른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그러니 모나리자가 멋을 몰라서 장신구를 걸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는 힘들게 된 셈이지요. 더군다나 모나리자의 남편 게라르디니는 피렌체에서 손꼽히는 부호였어요. 당대 최고의 화가인 다빈치를 불러서 아내의 초상화를 주문할 정도로 엄청난 부자가 그까짓 목걸이나 팔찌를 선물하는데 돈을 아까워했을 리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나리자의 ‘빈티지 생얼’ 모드는 더욱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다빈치는 뛰어난 자연 관찰자였어요. 천문학 수학 공학 수리학 동물학 식물학 해부학 등 자연과학의 모든 분야를 끝없는 열정을 가지고 탐구했지요. 그러나 다빈치의 호기심은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어요. 눈에 보이는 자연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연의 비밀스러운 원리까지도 밝혀내려고 애썼어요. 가령, 영혼이나 감정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잡을 수 없지요. 그러나 영혼의 보이지 않는 작용은 그 사람의 눈빛과 표정, 몸짓과 겉에 걸친 옷의 주름까지도 바꾸어 놓게 마련이에요.

다빈치는 영혼의 어떤 작용이 모나리자의 얼굴에 미소를 피어나게 했는지 알아내려고 했어요. 그가 직접 써서 남긴 쪽지에는 영혼과 육체의 상관관계를 밝히려는 수많은 관찰기록과 단상들이 기록되어 있어요. 대부분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서 급하게 쓴 내용들이지요. 우리는 바삐 흘려 쓴 낡은 쪽지 기록들을 통해서, 그리고 그의 붓을 통해서 탄생한 모나리자의 미소를 통해서 화가 다빈치가 얼마나 간절하게 그림 속 초상화의 주인공에게 생명을 부여하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다빈치의 이런 노력이 모나리자를 인류 최고의 걸작으로 불리게 한 것이지요.

노성두 서양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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