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대안교과서’ 책임편집 이영훈 교수 인터뷰

  • 입력 2008년 3월 26일 02시 50분


‘줄기찬 저항 결과로 독립쟁취’ 명시

‘일제 식민지배 미화’로 보는건 부당

독재를 정당화? 좌편향 일방 서술 벗어나 양면성 본 것

명성황후 격하? 대한제국 성립 前 시해… ‘왕후’가 적확

역사학자 없이? 근현대사는 해당 분야 전문가가 따져야

“현행 교과서의 이념에 무조건 반대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펴낸 게 아닙니다. 분명한 역사적 사실은 있는 그대로 서술하고 평가가 부족했던 부분은 제대로 평가하자는 생각, 나아가 역사의 다양한 측면을 실증적으로 기술함으로써 기존 역사관, 역사 교육, 역사 교과서의 오류를 바로잡자는 생각에서 쓴 책입니다.”

출간과 동시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기파랑)를 책임 편집한 이영훈 서울대 교수. 그는 25일 인터뷰에서 “여러 비난과 비판이 있는데 대부분 책을 전체적으로 보지도 않은 채 일부 보도에 편승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대안교과서가) 일제의 식민 지배를 미화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아주 큰 오해다. 일제가 야만적 지배로 한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했다는 점, 한국민의 줄기찬 저항의 결과로 독립을 이뤄 냈다는 점을 분명히 썼다. 그런데도 ‘대안교과서는 식민 지배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를 이뤘다는 식으로 썼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안교과서는 수탈, 억압, 차별 속에서도 우리 스스로 근대문명을 습득하고 축적했다는 사실을 강조했을 뿐이다. 일제강점기에 3만 명이 유학을 떠나 근대 문명을 배웠고, 4000여 명이 일본인의 멸시 속에서도 공장을 세웠다. 이후 건국 과정까지 영향을 미친 한국민의 피나는 노력을 강조했는데 그걸 ‘식민 지배 미화’라고 비판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

―독재를 정당화했다는 비판도 있는데….

“역시 전체 내용을 보지 않은 데서 생긴 오해다. 이승만 박정희의 공적을 기술하면서 동시에 이승만 시대를 ‘권위주의 정치 시대’로, 박정희 시대를 ‘민주주의가 취약했다’고 분명히 평가했다. 좌파에 편향된 일방적 서술에서 벗어나 양면성을 따져본 것일 뿐 독재를 미화한 것은 아니다.”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평가가 기존과 다르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승만은 세계정세에 대한 해석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개념을 바탕으로 근대국민국가를 추구했다. 그런데 기존 교과서 가운데엔 4·19혁명에 8쪽을 할애하면서 이승만에 대한 서술은 2쪽에 그친 것도 있다.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김구는 독립운동에 족적을 남겼지만 ‘민족’만 주창했을 뿐 건국에 대한 비전은 없었다. 또 건국 이후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건국사 부분에서 그에 상응하는 기술을 한 것이다.”

대안교과서는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모임인 교과서포럼이 3년여 만에 낸 것이다. 포럼은 “현행 고교 검인정 근현대사 교과서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좌파 편향적 역사 인식을 심어준다”며 그 ‘대안’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대안교과서는 일제강점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대한민국 건국과 남북한에 대한 인식 등이 현행 교과서와 크게 달라 논란이 일고 있다.

‘명성황후’를 ‘민왕후’로 표현한 점도 반발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명성황후가 시해된 것은 1895년이며,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호칭이 ‘황후’로 바뀌었다”며 “따라서 시해 당시 상황을 서술할 때는 ‘왕후’가 더 적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민왕후’는 명성황후를 격하한 게 아니라 당시 호칭이던 ‘민비’를 격상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 4·3사건과 여수·순천 10·19사건을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으로만 기술했다는 지적도 있다.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주도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건 도중에 제주도 특유의 지역 갈등 요인이 더해지면서 잔혹한 양상으로 변질돼 갔다는 점도 사실이다. 그래서 제주 4·3사건을 별도로 처리한 박스에선 ‘서북 출신의 경찰관들이 제주도민에게 폭력을 남용했다’ ‘군은 제주도 산간지대를 대상으로 가혹한 진압작전을 펼쳤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집필자 중 역사학자가 없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고대사나 중세사는 사료 해독의 전문성 때문에 전공자들이 서술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근현대사는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해독의 어려움도 없다. 역사학자가 아닌 정치사, 경제사 등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따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역사라는 건 여러 분야의 연구 결과물이 학제 간 결합을 거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유영익 연세대 석좌교수 등 역사학 전문가 4명이 책을 꼼꼼히 감수했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지금까지 배운 것과 달라 혼란스럽다는 이도 많다.

“그래서 역사 인식이 무섭다. 역사 교육의 중요성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교과서에서 ‘반일민족주의’가 강조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다. 이전 교과서에는 식민지 역사에 있어 우리 민족이 반성해야 할 부분에 대한 기술도 있었다. 또 1970년대 초부터 교과서에서 ‘일본에 식량을 수탈당했다’고 쓰기 전에는 ‘일본에 식량을 수출했다’고 기술됐다. 이 책은 그처럼 한쪽의 시각으로 쓰인 역사에 대한 문제 제기다. 앞으로 역사 교과서를 쓴다면 대안교과서를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의미는 충분하다.”

한편 집필자 중 한 사람인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이날 함께한 자리에서 “(대안교과서가) 일본 우익단체가 낸 후소샤판 교과서와 인식이 같다”는 일부 비판에 대해 강력 반박했다. 그는 “미국 네오콘의 음모, 일본의 끄나풀, 국가주의자 등 여러 비판이 있는데 이 책의 어떤 내용에 근거해 그런 비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런 비난을 하는 역사학자들은 과연 역사학자가 맞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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