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토론해 봅시다]폐쇄회로TV 설치는 정당한가?

  • 입력 2008년 3월 17일 02시 53분


범죄자 검거 일등공신 vs 사생활-인권 침해 소지

○ 배경

전 프로야구 4번 타자가 관련된 네 모녀 실종사건의 전말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 속 흉악범죄의 참상을 또다시 보여 주었다. 이번 사건 해결의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폐쇄회로(CC)TV 화면이었다. 모녀가 실종된 아파트와 고속도로 요금소 등에 설치된 CCTV의 화면이 용의자를 밝혀내는 데 중요한 증거로 사용됐다.

CCTV가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연관되면서 개인의 행동은 감시카메라에 의해 시시각각 감시되고 녹화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CCTV가 범죄 예방 효과를 낸다고 신뢰하면서 주택가 구석구석에 무분별하게 설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CCTV. 범죄 예방 효과가 뛰어나고 범인 검거에도 효과적이므로 찬성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정보 통제와 개인 사생활 침해의 관점에서 반대할 것인지 꼼꼼히 살펴보자.

▶찬성 논거

CCTV는 은행 강도나 방화범을 잡기 위해 설치된 것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 감시 카메라, 과속 방지 카메라 등으로 우리의 일상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감시 카메라들로 이뤄진 정교한 네트워크 속에서 살아가면서 보호를 받고 있다. ‘감시당한다’는 불안감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우리가 ‘자청한’ 감시 체제이다. CCTV의 효용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그 문제점을 최소화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법적 근거’를 내세워 CCTV의 무분별한 설치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CCTV 한 대가 경찰관 10명보다 효과적”이라는 게 현장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들의 이야기다.

현실이 어느 한 순간이라도 평화로울 때가 있었던가! 지나친 이상은 환상에 가깝다. 현실적인 필요성과 범죄 예방의 효용성이란 관점에서 CCTV 설치의 정당성이 입증될 수 있다.

▶반대 논거

우리는 하루에도 부지불식간에 CCTV에 수십 번 노출된다는 통계가 있다. 우리 사회는 개인 정보의 유통과 통제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떨어진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보자. 여기서 ‘빅 브러더(Big Brother)’가 그러했듯, 시민 개인의 생활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사회의 모습이 엄연한 현실로 드러날 수 있다. 정보사회에서 어느 한 방향으로 정보가 흐르거나 독점될 경우에는 부당한 억압과 감시가 발생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제레미 벤담의 ‘판옵티콘(Panopticon)’은 정보의 불평등 관계에서 생겨나는 부당한 억압을 지적한 것이다. 감시자는 죄수를 볼 수 있지만, 죄수는 감시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한 구조에서 개인의 자유는 박탈당하고 억압이 발생하게 된다.

감시 체제가 일반화된 사회는 자율성과 역동성을 잃게 되고, 도덕성은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개인의 사생활과 인권이 침해될 소지가 있는 ‘손쉬운’ 감시체제가 아니라, 비용과 번거로움이 수반되더라도 ‘돌아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진지한 논의와 성찰 없이 현실적 필요에 의해 CCTV가 무분별하게 설치되는 것은 검토되어야 한다.

○ 핵심 찌르기

인권은 두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사생활 침해의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범죄로부터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안전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 바로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범죄 예방과 검거를 통해 시민들의 인권이 보장된다는 측면과 그 과정에서 발생될 수밖에 없는 인권 침해의 가능성, 이 둘을 놓고 경중을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CCTV 설치 논란은 정보사회의 자유와 평등이란 관점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사회는 어떤 종류의 부당한 억압과 불평등도 있어서는 안 된다. 다양하게 생성되고 유통된 정보들이 넘쳐 나는 정보사회는 쌍방향적이고 평등해야 한다. 불평등한 정보의 흐름은 감시를 낳기 때문이다. CCTV를 ‘자청한’ 감시라며 현실적인 필요만을 강조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한편, 정보의 불평등한 흐름이 또 다른 ‘부당한 억압과 감시’를 낳을 수 있다는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 논술 쓰기

‘정당한가’와 ‘필요한가’는 서로 다른 차원의 물음이다. ‘정당성’은 가치와 당위의 차원이고, ‘필요성’은 사실과 효과의 차원이다. 토론이나 논술 쓰기에 있어서는 논제에 제시된 용어 자체를 정밀하게 따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CCTV가 ‘필요한가’라는 현실 속 필요성의 관점에서는 찬성 논거가 비중 있게 다루어질 수 있는 반면, CCTV가 ‘정당한가’라는 차원에서는 반론의 논거를 풍부하게 제시할 수 있다.

정보사회는 편리성과 효율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현실적 필요성 이면에 간과하기 쉬운 도덕적인 문제점을 찾는 일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임을 명심하자. ‘반성되지 않는 삶은 무가치하다’라는 소크라테스의 언명을 생각해 볼 대목이다.

○ 관련 문제

CCTV 설치, 인간 배아 복제와 관련된 두 개의 기사를 읽고 제기될 수 있는 공통의 논제를 찾아서 △과학기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과학기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각각 보여 주는 두 개의 제시문 중 하나만을 주장의 근거로 이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

[강남대 2005학년도 수시2 논술]

권윤호 경기 용인 풍덕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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