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통계로 세상읽기]평균수명은 계속 늘어날까?

  • 입력 2008년 3월 17일 02시 53분


《세계보건기구(WHO)는 2002년 ‘세계 질병 부담’이라는 색다른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하버드대와 함께 5년에 걸쳐 진행한 초대형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었다. 그전까지 WHO는 사망률을 기준으로 각 질병의 심각성을 따졌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전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질병의 심각성에 접근했다.》

잘못된 식생활… 도시화… 달라지는 인류 3대질병

2020년엔 ①심장질환 ②우울증 ③교통사고

치료비 등 직접비용과 노동력 손실 등 간접비용·기회비용을 모두 포함한 사회적 비용으로 각 질병의 심각성에 새로운 순위를 매긴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1990년에는 폐렴, 설사, 출산 관련 질병이 3대 질병으로 꼽혔다. 의외의 결과다. 하지만 시야를 지구촌 전체로 넓히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만 해도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 있다. 소비 수준과 생활 습관이 그렇다. 한국인이 많이 걸리는 병을 가지고 지구촌 전체의 상황을 가늠하기는 곤란하다. 가난, 낮은 의료 기술, 열악한 환경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상상외로 많은 것이다. 설사가 두 번째인 것은 그만큼 더러운 물을 먹고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2020년의 상황도 예견하고 있다. 2020년에는 어떤 질병이 인류를 가장 많이 괴롭힐까? 답은 심장질환, 우울증, 교통사고다. 인류 전체의 생활 패턴이 상당히 선진국화되고 도시화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예측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추세로 간다고 할 때 한국인의 건강은 어떻게 될까? 평균수명은 늘어날까, 줄어들까?

역사 속 인류의 평균수명을 보자. 대부분의 시대에서 사람들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요절’했음을 알 수 있다. 영국 산업화 초기인 18세기에 맨체스터 같은 도시의 평균수명은 겨우 26세 정도였다. 워낙 유아 사망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죽지 않는다 해도 오래 살지 못하는 게 보통이었다. 국내에서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수명을 보면 46세 정도에 그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갑자기 인류의 평균수명이 늘어난 까닭은 무엇인가? 과학 기술의 발달이 결정적이었다. 그 가운데서 공중 보건과 예방의학의 발달이 가장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항생제 같은 치료제가 개발되어 놀라운 속도로 전염병을 정복해갔다. 천연두나 소아마비 같은 전염병은 거의 퇴치됐다. 소독약이 대대적으로 개발·보급되고 환경 위생이 강화되면서 질병이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있다. 이제 인류는 유전공학의 발전에 힘입어 선천적인 질병이나 치매 같은 난치병까지 정복할 꿈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평균수명은 과연 이대로 계속 늘어날 수 있을까?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수명이 늘어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는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다. 물론 의학자들이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겠지만, 그 속도를 앞질러 약제에 끄떡도 하지 않는 새로운 돌연변이가 출현하고 번식할 것이다. 지금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종 바이러스나 어떤 항생제로도 치료되지 않는 슈퍼 박테리아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게다가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는 매년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사람들의 건강 문제다. 미래의 평균수명을 예측하려면 지금 젊은이들의 체력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문화관광부가 2월에 발표한 ‘2007 국민체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의 신장과 체중은 2004년에 비해 늘어났다. 그러나 운동 능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20대 남자들의 복부 비만도 늘어나고 있다. 다른 조사에 따르면 식생활 습관에서 외식과 고기 섭취가 점점 늘어나고 청소년의 흡연과 음주도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 때문에 밤을 새우고 늦잠을 자는 청소년도 급증하고 있는데, 이는 영양 결핍과 운동 부족으로 인한 성장 및 면역 기능 저하, 만성 빈혈을 초래할 수 있다.

체격은 좋아지지만 체력은 점점 떨어진다는 청소년들, 과연 50년 뒤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수명만이 문제가 아니다. 오래 산다 해도 이런 저런 병에 걸려 고생을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 내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잠자는가에 따라 앞으로의 내 삶의 질이 좌우될 것이다. 몸속에 깃들어 있는 생명을 소중하게 대할 일이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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