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토론해 봅시다]문화재 개방 통제해야 하나

  • 입력 2008년 2월 25일 02시 50분


숭례문 참사 되풀이 안돼 vs 방재 완벽하면 문제없다

○ 배경

숭례문의 전소(全燒)로 온 국민이 깊은 충격에 빠졌다. 화재의 참상을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접하며 만감이 교차했으리라. 문화재 화재에 대비한 매뉴얼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방재 본부와 문화재청이 우왕좌왕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에 국민의 상실감과 분노는 극에 달했다. 한편으로는, 문화재가 어떤 의미를 갖는 존재인지에 대해 그동안 무심했던 많은 사람을 향해 숭례문이 ‘소신공양(燒身供養)’함으로써 몸소 알리는 것 같아 무거운 죄의식이 밀려들기도 한다. 문화재를 그저 ‘주변에 있는 옛것’ 정도로 인식해 온 태도에 대해서도 반성의 계기가 되고 있다.

한편 문화재 개방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높은 편이다. 2005년에는 경복궁의 경회루와 교태전이 개방되었고, 2006년에는 숭례문과 서울성곽 북악산 숙정문이 개방되는 등 시민들의 문화재 향유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부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숭례문 전소에 대한 책임 공방이 한창이다. 참사의 원인을 숭례문의 성급한 개방에 돌리는 주장이 그것이다. 목조 문화재나 특정 국보급 문화재에 대해서는 시민의 접근을 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문화재에 대한 관심 증가에 따라 문화재 향유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할지, 아니면 안전하고 효율적인 문화재 보존을 위해 접근을 통제해야 할지를 두고 지혜로운 해답을 찾아보자.

▶ 찬성 논거

무계획적으로 중요 문화재를 개방한다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문화재를 파괴하고 훼손하는 일은 일상적으로 오물을 투척하거나 낙서하는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민 의식의 성숙 없이 섣부른 개방이 초래할 위험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하다. 문화유산을 슬기롭게 보존하고 후세에게 물려주기 위한 방안이 과연 무엇이지 생각해 볼 일이다.

주요 선진국에서도 진본과 유사한 사본을 제작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하거나, 특정한 기간에만 진본을 공개하는 등의 방안을 활용하고 있다. 시민에게 공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문화재 관리와 방재 체계 수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제2, 제3의 숭례문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문화재에 대한 관리체제를 점검하는 동시에, 무차별적인 개방이 허용된 문화재에 대한 통제를 실시해야 한다.

▶ 반대 논거

문제의 핵심은 문화재 방재 지식이 부족한 방재 당국과 문화재청의 안이한 대응에 있다. 사고 발생 직후 빠른 시간 내에 소방대원이 현장에 도착했음에도 숭례문이 전소되었다는 사실은 ‘사후 조치’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다. 문화재에 대한 전문적인 방재 절차와 지식 없이 문화재청의 지시를 기다리며 기와에 물만 뿌린 방재본부의 초기 대응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개방이 문제가 아니라 관리가 문제다. 미흡한 관리 시스템, 그리고 문화재를 전문으로 하는 방재 능력이 미비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 문화재 관리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다양한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총체적인 관리·방재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다.

문화재를 효율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개방은 필요하다. 개방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보호 장치와 방재 시스템을 확보해 긴급 상황 대처 능력을 갖춘다면 문제될 게 없다. 시민들이 문화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문화재가 보호되고 유지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찾아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도 문화재 개방은 필요하다.

○ 핵심 찌르기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이 긴요하다. 문화재 개방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보호 장치나 방재 시스템을 확보하지 않은 채 일단 개방하고 보자는 식의 생각은 무책임하다.

‘개방’ 혹은 ‘통제’라는 일방적인 잣대로 문제를 푸는 것이 한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도 가능하다. 문화재 향유권의 측면에서 문화재 개방은 바람직한 것이고 모든 문화재를 100%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문화재 개방을 전제로 한 뒤 ‘어떠한 대비책이 필요할 것인가’에 고민을 집중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숭례문 전소의 원인을 개방과 통제의 관점이 아니라, 관리와 방재 체제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바야흐로 세계는 문화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 중요 문화재의 가치는 경제적 가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인간은 ‘세속적’이기에 ‘비용과 편익’이란 경제 문제에만 신경을 쓰는 존재이기도 하다. 별도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언제나 ‘공짜’로 볼 수 있었던 숭례문. 결국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니 편익을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 사이에 숭례문 관리는 구멍이 뚫린 것이다.

○ 논술 쓰기

토론과 글쓰기의 주제에 따라 찬성과 반대가 대등하게 제시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관건은 어떠한 결론을 선택했느냐가 아니다. 논거의 참신성과 진정성이 중요한 것이다.

개방과 통제 그 자체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주장(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반대 의견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해 반박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문화재에 대한 글쓰기이다.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그저 나와는 무관한 세계에 속한 피상적인 이야기로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문화재의 문제를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추상적인 글만 쓰게 된다. 문화재를 ‘느낄’ 수 있는 안목과 정서적 여유가 필요하다.

○ 관련 문제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창작하고 감상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를 바탕으로 두 그림을 비교 감상하시오.

[서울대 2008학년도 2차 예시논술]

권윤호 경기 용인 풍덕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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