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통계로 세상읽기]나와 같은 성(姓)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

  • 입력 2008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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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는 원래 고대 신분제의 산물

삼국시대엔 왕족-귀족만 가졌죠

“이름도 성도 모른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뜻하는 이 말은 언제부터 사용됐을까? 성씨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시대의 것이다. 역사 기록을 보면 고구려는 장수왕 때부터 고씨(高氏) 성을 썼고, 백제는 근초고왕 때에 여씨(餘氏)라 했다가 무왕 때부터 부여씨(夫餘氏)라 했고, 신라는 진흥왕 때부터 김(金)이라는 성을 사용했다. 삼국시대에는 왕족이나 귀족만 성을 갖고 있었지만 고려 때는 평민들까지, 조선 후기에는 천민들도 비로소 성을 갖게 됐다. 애초에 ‘성씨’는 신분을 표시하는 수단으로 만들어졌던 셈이다. 현재 국내에는 ‘가’에서 ‘흥’까지 모두 290여 개의 성씨가 있다.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다.”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을 찾기 어려울 때 쓰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김씨는 5명 중 1명꼴(21.6%)이기 때문에 김 아무개 씨를 찾으라고 한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으로 많은 성씨는 7명 중 1명꼴(14.8%)인 이(李)씨, 12명 중 1명꼴(8.5%)인 박(朴)씨가 있다. ‘김, 이, 박’씨를 합하면 2000여만 명으로 우리나라 사람 2, 3명에 1명꼴이다. 그렇다면 가장 수가 적은 성씨는 무엇일까? 예(乂), 삼(杉), 즙(汁)씨를 만나 본 적이 있는가? 이들을 만났다면 당신은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한 것이다. 이들은 전체 인구에서 100명 미만 밖에 되지 않는 희귀 성씨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귀화하는 외국인이 새로운 성씨를 짓는다고 하니, 앞으로 희귀 성씨는 더 늘어날지 모를 일이다. 유럽계 ‘스’씨를 만나거나 동남아시아계 ‘얌’씨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너는 어디 ○씨냐?”

성과 이름을 밝히고 나면 뒤이어 듣게 되는, 본관(개인의 시조가 난 곳 또는 성씨가 처음 사용된 곳)을 묻는 질문이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본관은 ‘경주’(87개 성씨)이고, 그 다음으로 ‘진주’(80개 성씨), ‘전주’(75개 성씨)순이다. 사람 수로만 보면 ‘경주’ 본관을 가진 인구가 482만 명으로 가장 많고, ‘김해’ 본관의 43개 성씨를 가진 인구가 449만 명으로 그 뒤를 잇는다. 성씨와 본관을 합쳐서는 ‘김해 김씨’가 9.0%로 제일 많고, 그 다음으로는 ‘밀양 박씨’(6.6%), ‘전주 이씨’(5.7%) 순이다.

본관은 인구가 많아지면서 성씨만으로 혈족을 구별하는 것이 어려워져지자 조상의 출신지나 거주지명을 성 앞에 붙이던 데서 생겨났다. 고려시대 때 처음 만들어져 성씨와 마찬가지로 신분을 표시하는 수단으로 주로 지배층에서만 사용되다 나중에는 누구나 사용하게 됐다. 사람을 만나 본관을 묻는 우리네 관습은 어쩌면 신분을 확인하려는 오랜 무의식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성을 갈겠다.”

성씨를 사용한 이후 ‘성(姓)은 바뀌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온 우리나라에선 굳은 맹세나 약속을 할 때 ‘내가 ∼하지 않으면 성을 갈겠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여기서 성은 아버지(父)의 것이다. 실제로 다른 집안에 입양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씨는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성씨불변 원칙’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것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혈연의식과 부계 혈족주의를 강하게 보여 준다.

그런데 최근 이 원칙이 변하고 있다. 2005년에 ‘성씨불변 원칙’을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호주제’가 ‘헌법불합치’라는 판정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개정된 새 법에 따라 올해 1월 1일부터는 성씨를 바꿀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새 제도에 대한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고, 모계 성씨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도 아직 남아 있다. 신분제를 기초로 한 ‘부계 성 선택 및 성씨불변의 원칙’을 고수하는 한국 사회의 인식은 쉽게 바뀔 것 같지가 않다.

어쩌면 몇 년 전부터 나타난 성씨와 관련된 새로운 풍조들은 이런 사회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는지도 모른다. ‘강이○○’와 같이 부모의 성씨를 함께 쓰는 것은 법적으로 부(父)의 성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부계중심 성씨불변 원칙’에 대한 저항을 표현한 행동이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성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이름을 사용하거나, 성씨를 없애고 이름만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성씨’는 처음부터 신분제에 기인해 만들어졌고, 집단과 소속을 밝혀 혈연을 드러내며, 부계 중심의 불평등을 드러내왔다. 그러니, 사람을 만나 인사하면서 나와 같은 성을 쓰는지 꼭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구정화 경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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