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피랍자들 ○○먹고 기운차렸다

  • 입력 2007년 12월 29일 03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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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 2007… 해외사고 전담 오갑렬 대사가 밝히는 뒷얘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으로부터 풀려난 뒤에도 잔뜩 굳어 있던 피랍자들을 일제히 “네”라고 힘껏 외치게 만든 질문은?

“라면 먹을래요?”였다.

아프간 현지에서 피랍자 석방 협상에 참여했던 외교통상부 오갑렬(53) 재외국민영사대사가 털어놓은 비화 한 토막이다. 》

석방 뒤에도 ‘히잡’ 두른건 씻지 못한 탓

캄보디아 항공기 추락은 낡은 기체 때문

올해 해외서 한국인 49명 피살-75명 피랍

“2000년대 들어 해외 사건사고 가장 많아”

1월 10일 나이지리아에서 발생한 대우건설 직원 피랍사건부터 크리스마스인 25일 필리핀에서 일어난 교민 부부 살인사건에 이르기까지 2007년은 해외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은 해였다. 올 한 해 한국인 75명이 납치되고 49명이 피살됐다.

외교부는 공식적으로 올해를 ‘2000년대 들어 대형 해외 사건 사고가 가장 많았던 해’로 꼽았다.

해외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 사고 현장마다 오 대사는 급파돼 사고처리를 전담했다.

▽가장 힘들었던 아프간 피랍사태=8월 29일과 30일 두 차례로 나뉘어 탈레반에게서 풀려난 피랍자 19명은 석방 직후 아프간 가즈니 주의 미군 지방재건팀(PRT) 사무실로 옮겨졌다.

하지만 피랍자들은 안전지대인 미군 사무실에서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쉽게 가시지 않은 데다 오랜 인질 생활로 기력이 달렸기 때문이었다.

이때 피랍자들의 심신 회복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음식은 한국에서 공수된 라면이었다.

“라면을 먹겠느냐고 했더니 침묵하던 사람들 얼굴이 환해지더니 모두 큰 소리로 ‘네’라고 대답했어요. 그래서 현지에 주둔하고 있던 동의·다산부대의 라면을 얻어다가 끓여줬더니 조금씩 기력이 회복돼 가더군요.”

이슬람 머릿수건인 히잡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풀려난 뒤 피랍자들이 미군 사무실에 왔을 때 제가 문 앞에 나가서 맞이했는데 다들 히잡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혹시 탈레반이 자살폭탄을 장치해 놓은 게 아닌지 일일이 물어보고 몸수색을 한 뒤에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죠.”

몸수색이 끝난 뒤에도 피랍자들은 한동안 이슬람 히잡을 두르고 있었다. 오 대사는 “제대로 씻질 못해서 그랬던 것”이라고 말했다.

피랍자들은 가즈니 주에서 카불의 호텔로 이동한 뒤 샤워를 하고 나서야 히잡을 벗었다.

▽예견됐던 캄보디아 항공기 추락=오 대사를 가장 안타깝게 했던 사고는 6월 25일 한국인 13명을 포함해 22명이 사망한 캄보디아 항공기 추락이었다.

그는 사고 당시 함께 캄보디아에 파견돼 현장을 확인한 건설교통부 항공안전관들에게서 “비행기 자체가 구형이어서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

조사 결과 사고 직전 조종사는 악천후 때문에 자동항법장치를 수동으로 바꿨고 눈앞에 산이 솟아올라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오 대사는 “건교부 항공안전관들이 ‘신형 비행기는 수동으로 항법장치를 바꿔도 밑에 있는 장애물이 가까워지면 경고음을 낸다. 신형 비행기였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여행자 피랍은 국가적 손실=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옛 출입국관리국)에 따르면 올해 11월 말 현재 해외 출국자는 1157만여 명으로 12월 말까지 모두 1260만여 명이 출국할 것으로 추정된다.

2004년 910만여 명에서 지난해 1180만여 명으로 늘어 매년 100만 명 가까이 늘고 있는 셈이다.

오 대사는 “해외여행자가 매년 급증하는 상황에서 여행자 개인이 피랍되는 것은 그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손실이라는 게 아프간 사태에서 증명됐다”며 “출국 전 여행지역이 안전한 곳인지를 외교부 영사콜센터(02-3210-0404)나 홈페이지(www.0404.go.kr)를 통해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정답 :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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