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휘체계 혼선… 방제작업 우왕좌왕

  • 입력 2007년 12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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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 “뭐부터 해야죠”

현장공무원 “우리 담당 아닌데요”

《“도대체 방제 현장을 지휘하는 사람이 누굽니까?” 충남 태안군 기름 유출 사고 발생 5일째인 11일 만리포해수욕장. 자원봉사를 하려고 달려온 박모 씨는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봤지만 모두들 ‘나는 담당이 아니다’라고만 대답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주변에는 장비도 없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작업 현장 근처를 서성이는 자원봉사자가 적잖이 눈에 띄었다. 1만3400여 명이 방제 작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부처 간 업무가 혼선을 빚으면서 이처럼 자원봉사자 관리조차 제대로 안 되는 실정이다. 》

○ 복잡한 지휘체계, 업무 혼선 심화

11일 정부 각 부처에 따르면 해양수산부 등 8개 중앙부처와 충남도 등 지방자치단체, 한국해양오염방제조합이 이번 사고 대처 업무를 나눠 맡고 있다.

주무 부처인 해양부는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운영하고, 행정자치부는 장관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다. 해경과 방제조합은 바닷물에 떠 있는 기름띠를, 각 지자체는 해안으로 밀려온 기름의 처리를 담당하고 있다. 환경부는 생태계 피해 조사를 맡고, 국방부(군)와 산업자원부 경찰청 산림청이 헬기와 인력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부처가 참여하고 있어 지휘체계가 복잡하고 서로 연락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현장에서는 “도대체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방제조직과 해안 방제장비를 갖춘 것은 해양경찰청이지만 해안방제 주관기관은 이런 능력이 부족한 각 지자체로 돼 있다.

이날 태안군 해변에서 방제작업을 하던 한 자원봉사자는 “여러 기관의 업무를 조정할 ‘컨트롤 타워’가 없어 중구난방에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이완구 충남지사도 이날 사고 현장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국무총리 산하인 전담대책반을 중앙부처와 충남도, 태안군에 설치해 달라”고 건의했다.

노 대통령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사고 수습이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국무위원들을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 장비 부족해 방제작업 차질

정부는 8월 울산 앞바다에서 대규모 해상 기름 방제훈련을 실시하고 “사고 3일 이내에 1만6000t 이상의 기름을 걷어낼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고 4일째인 10일까지 걷어낸 기름은 909t에 불과했다.

방제 지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해양부는 11일 “방제장비의 유지 관리와 장비를 운영할 인력에 대한 훈련이 당초 예상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며 준비 부실을 인정했다.

게다가 2005년 5월 해양부가 만든 대형 해양 오염 사고에 대한 위기관리 매뉴얼에 적힌 해양 오염 신고전화 ‘지역 주요 국번+5050’은 상당수가 불통이거나 일부 지역에서는 엉뚱한 곳으로 연결됐다. 해양 오염 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응 태세가 얼마나 안이한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방제 장비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해양경찰이 보유한 방제선은 300t급 이하여서 대형 재난에는 한계가 있고 그나마 악천후에는 제구실을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방제작업에 필요한 흡착포의 양은 하루 25t이지만 남아 있는 재고는 5t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부 자원봉사자는 쓰레받기, 물통으로 기름을 퍼 담았다.

이날 만리포해수욕장 주변 해안에서는 부족한 흡착포 때문에 방제조합 직원과 환경단체 회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환경단체 회원들이 흡착포를 바위 근처에 덮자 방제조합 직원들이 “이미 기름이 완전히 덮인 부분에 왜 당신들 마음대로 유흡착포를 뿌리느냐”며 제지했기 때문이다.

양측이 목소리를 높이며 자기주장을 펼치는 동안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은 “누구 말이 맞는 거냐”며 허탈해했다.

태안=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촬영 : 김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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