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학교에 마을도서관을]거창 신원초교 마을도서관

  • 입력 2007년 12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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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경남 거창군 신원면 과정리 신원초등학교에 마을도서관인 ‘책 읽는 놀이터’가 들어섰다. 거창교육청 박성조 교육장, 거창군 강석진 군수,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 김수연 대표, 경남도 교육위원회 이무진 부의장, 신원초등학교 손봉호 교장(왼쪽부터)이 학생들과 ‘책 읽는 놀이터’ 개관을 기뻐하고 있다. 거창=염희진 기자
지난달 16일 경남 거창군 신원면 과정리 신원초등학교에 마을도서관인 ‘책 읽는 놀이터’가 들어섰다. 거창교육청 박성조 교육장, 거창군 강석진 군수,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 김수연 대표, 경남도 교육위원회 이무진 부의장, 신원초등학교 손봉호 교장(왼쪽부터)이 학생들과 ‘책 읽는 놀이터’ 개관을 기뻐하고 있다. 거창=염희진 기자
지난달 24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토산초등학교 강당에서 동화작가 김향이 씨(오른쪽)가 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책이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는지’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서귀포=부형권 기자
지난달 24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토산초등학교 강당에서 동화작가 김향이 씨(오른쪽)가 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책이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는지’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서귀포=부형권 기자
제주 토산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 걸린 말 그림.
제주 토산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 걸린 말 그림.
“지금 무슨 책 읽어?” “….” “책 많이 생겨서 좋아?” “….”

‘마법천자문’을 읽고 있던 신원초등학교(경남 거창군 신원면 과정리) 6학년 곽은혜 양은 수줍어서 어쩔 줄 모른다.

그래도 은혜 양을 비롯한 이 학교 학생 40여 명은 네이버 책 버스(도서관처럼 꾸민 이동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무서운 집중력을 보였다. 마음에 드는 책을 잡자마자 책장이 뚫어질 것처럼 보며 아무 말도 시키지 말라는 표정이었다.

이곳은 북쪽으로는 덕유산, 서쪽으로 지리산, 동쪽으로 가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친, 말 그대로 오지(奧地)다. 아이들이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짐작이 갈 정도다.

본보, 네이버와 함께 ‘고향학교에 마을 도서관을’ 캠페인을 벌이는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지난달 16일 이곳 신원초교에 ‘신원마을도서관’을 개관했다.

○ 거창에 생긴 ‘거창한’ 도서관

“우리 신원면에 경사가 났죠? 이게 얼마 만입니꺼.”

이날 오후 열린 ‘신원마을도서관’ 개관식에 달려온 강석진 거창군수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은 신원마을도서관에 어른 책 780권과 어린이 책 1500여 권을 포함해 2500여 권을 지원했다. 돈으로 따지면 2000여만 원 규모다.

이 마을 도서관의 이름은 ‘책 읽는 놀이터’. 원래 교실 절반 크기의 도서관이 하나 있었는데 이번 후원으로 ‘살림살이’가 늘어나자 학교 측이 도서관을 하나 더 증설했다. 1층 복도 옆 창고 자리에 두 번째 도서관을 만든 것. 공간은 그리 넉넉하지 않지만 책장으로 둘러쳐진 가운데 공간에 전기장판도 깔려 있다.

도서실 담당 배금야 교사는 “날씨가 추워지기 때문에 책 빌리러 온 주민들의 발길을 붙들고자 전기장판을 깔았다”고 말했다.

도서 기증식에는 강 군수, 거창교육청 박성조 교육장, 김수연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글짓기 대회 시상식도 열렸다. 학생들이 책을 주제로 한 다양한 글을 선보였다.

푸름이닷컴(www.purmi.com)의 최희수 대표는 ‘자연과 독서가 행복한 영재를 만든다’를 주제로 자연 속에서 독서를 통해 아이들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상상력을 키워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강연했다. 최 대표가 “아이들은 모두 자기만의 영재성을 지니고 있고 책읽기를 통해 그것을 일깨울 수 있다”고 강조하자 주민과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거창군의회 신주범 의원은 “이곳은 엄마 아빠가 도시에서 일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60%에 이른다”며 “모두가 살기 어렵다고 떠나 버린 이곳에 일면식도 없는 김 대표가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고 말했다.

개관식을 계기로 모처럼 마을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오랜만에 잔치 분위기가 조성됐다. 안정희(61) 씨는 “평생 벼농사만 짓다가 갑자기 책을 보니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고 글자도 어른거린다. 도서관에 돋보기를 비치하고 독서 교사도 지원해 달라”며 강 군수에게 즉석 제안을 하기도 했다.

경남 함안군에서 두 시간이나 걸려 이 자리를 찾아온 학부모도 있었다. 함안군 여항면 외암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정은미 씨는 “우리 학교에는 그나마 있던 작은 도서실도 컴퓨터실에 밀려났다”며 “배움의 보루인 도서관이 이렇게 거창하게 생긴다니 부러워 구경하러 왔다”고 말했다.

○ 거창군, 마을도서관 사업에 1억 원 지원

이날 개관식에서 거창군 거창교육청과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은 ‘책 읽는 평생학습도시 거창 만들기’ 협약서를 체결했다.

거창군은 이 협약서를 통해 △거창군 내 12개 읍면에 마을도서관 개설 △방과 후 학교마을도서관 운영을 위해 운영비 지원 △마을도서관의 야간 개방을 위한 후원 등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 거창군은 2008년 예산 중 도서관 사업을 위해 1억 원을 책정했다. 이 돈은 거창군 내 12개 읍면 학교마을도서관에 지원된다.

‘마을의 양식을 끌어오는 머슴’이라고 불러 달라는 강 군수는 그동안 타지에서 활동하는 동향 출신 기업가들에게 책을 기증받기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그는 “아이들이 컴퓨터를 켜면 오락밖에 더 하느냐. 만화책이라도 좋으니 글을 읽어야 한다”며 “읽으면 일단 생각하기 시작하고, 생각이 시작되면 꿈을 키우게 된다”고 말했다.

거창=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 제주 토산초교 마을도서관

‘말의 미소.’

프랑스의 동화 작가 크리스 도네르의 대표 작품이다.

배경은 주민 수가 해마다 크게 줄어드는 프랑스의 한적한 시골 마을. 줄거리는 희망을 잃어 가던 초등학생들이 선생님의 권유로 ‘비르 아켕’이란 말 한 마리를 힘들게 사서 키우면서 삶에 대한 열망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토산초등학교의 4학년 교실 앞쪽에는 희망을 상징하는 이 ‘비르 아켕’ 말 그림이 걸려 있다. 이 반 담임인 이호석(34) 교사는 ‘말의 미소’를 읽고 시골 학교 살리기 운동에 헌신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년별 1개 학급에, 전교생이 68명에 불과한 이 작은 학교 근무를 자원했다는 것이다.

책에서 얻은 그의 희망은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이되고 있다. 이 학교의 도서 담당 책임자이기도 한 이 교사는 입버릇처럼 “책은 아이들의 가능성이자 희망”이라고 말한다.

지난달 24일은 ‘놀토(노는 토요일)’였지만 이 학교는 아이들과 학부모로 북적였다. 본보, 네이버와 함께 ‘고향 학교에 마을 도서관을’ 캠페인을 벌이는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2730권의 책을 기증하고 토산마을도서관을 개관했기 때문이다.

도서관처럼 꾸민 ‘책 버스’ 안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진 저학년 어린이들, 책이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는지를 재미있게 얘기해 주는 동화작가 김향이 씨의 강연에 귀 기울이는 고학년 학생들과 학부모들. 한바탕 책 잔치가 펼쳐진 것이다.

이 학교의 고정하 교장은 “어릴 때 독서 습관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큰 꿈을 키워 가는 작은 씨앗 같은 아이들이 독서를 통해 그 싹을 틔울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의 김수연 대표는 아이들에게 “책 많이 읽으면 잘산다. 2730권의 책을 다 읽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책 보따리를 들고 또 오겠다”고 말했다.

1980년대까지는 전교생이 300여 명에 이르렀던 이 시골 학교는 인구 감소에 따라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한때 폐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매년 2000만 원을 모아서 외부인에게 무상 임대 주택을 제공하며 ‘인구 유입’에 나서 학교를 극적으로 살려냈다.

그런 학교에 대한 주민과 학생들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6학년 최민석(12) 군은 “작은 학교지만 우리 학교가 최고다. 특히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관심과 애정으로 보살펴 주셔서 참 좋다. 책이 많아져서 더욱 좋다”고 말했다.

토산마을도서관의 민간 운영위원장인 김재근(42·농업) 씨도 “도서관 개관을 계기로 더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더욱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올가을부터 시각장애인을 위해 책 내용을 녹음하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점자 수업을 받는 등 장애인의 고충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이런 봉사는 그들이 책을 통해 느낀 감동을 앞 못 보는 또래의 어린이들과 나누겠다는 취지다.

이처럼 책으로 옮겨지는 ‘꿈과 희망의 전염병’이 더욱 창궐했으면 하는 바람이 마을도서관에 가득 퍼졌다.

서귀포=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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