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충무공 이순신 ‘난중일기(亂中日記)’

  • 입력 2007년 12월 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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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찢어진다… 죽고싶다…”

잦은 병치레 끝없는 번민에

남몰래 한숨 토한 평범한 중년

너무나도 인간적이었던

성웅의 참모습을 만나보세요

1905년, 조선 땅에서 청나라를 몰아낸 일본은 러시아와도 전쟁을 벌입니다. 이때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상대로 싸워 승리했던 일본 해군 제독이 있었습니다. ‘도고 헤이하치로’라는 사람인데요, 이 사람에게는 존경하는 조선 사람이 한 명 있었답니다.

이 조선 사람은 7년 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아프지 않은 날이 거의 없을 만큼 병치레를 자주 했고, 조금만 무리를 하면 몸살이 났습니다. 또 어머니가 건강하신지 하루가 멀다 하고 걱정하던 소심한(?) 군인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국가를 위해 싸우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전쟁 중임에도 고기를 먹지 않아 ‘국가에 중요한 책임이 있는 사람이 사적인 일로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며 임금에게서 꾸지람을 듣기도 했습니다. 나라의 지원이 충분치 않자 그는 직접 농사도 짓고, 물고기도 잡고, 소금도 만들고, 군량미를 구하러 돌아다니면서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아가 싸우다가 결국은 죽고 말았습니다.

살아생전 임금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한때는 그를 “죽이라”고 명하기까지 했습니다. 죽음을 겨우 면한 그는 임금이 다시 임금과 백성을 위해 싸우라고 지시하자, 목숨을 걸고 적과 싸웠습니다. 이 사람이 임진왜란 당시에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 장군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순신은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멋있는 말을 남기고 전사한 장군입니다. 그는 백의종군하며 국가에 헌신했던 충성스러운 신하이자, 파죽지세로 달려드는 일본군의 사기를 꺾어버린 위대한 군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사실일 겁니다. 이항복을 비롯한 후대의 학자들이 기록한 사료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에도 이순신의 업적을 증명하는 수많은 기록이 남아 있으니까 말입니다.

우리는 드라마 영화 문학작품 위인전기 등을 통해 이렇게 위대한 ‘충무공 이순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너무나 완벽해서 많은 사람의 흠모를 받았지만, 결코 그 누구도 그렇게 될 수는 없을 위대하고 또 위대한 인간이 이순신 장군이지요.

하지만 이순신이 직접 쓴 그의 일기를 보면 땀 잘 흘리고, 자주 아프고, 고민도 많고,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도 잘 하고, “죽고 싶다”고 되뇌며 수시로 눈물을 흘리는 한 인간을 만나게 됩니다. 이순신 역시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추위가 닥치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자연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한 평범한 인간입니다. 너무 추우면 밖을 나다니지 못하고, 고민이 있을 땐 잠을 설치면서 자식과 늙은 어머니를 걱정하던 평범한 중년남성이었습니다.

다만 당시의 다른 관리들보다 조금 나은 점이 있다면 이순신은 스스로에게 정직했으며, 자기의 임무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 사람이라는 것 정도입니다. 다른 관리들이 전쟁 중에도 타락한 정신을 버리지 못하고 재산을 지키거나 권력을 잡는 데 목숨을 건 것과 달리, 이순신은 왜적을 물리치는 데 목숨을 건 것입니다.

이순신을 향한 예찬은 화려합니다. 그는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남겼습니다. 12척의 초라한 배로 130여 척의 일본 함대를 물리친 장군이며, 자칫하면 더 치욕스러울 뻔했던 우리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만한 것으로 만든 민족의 영웅이지요. 그런데 왜 난중일기를 읽고 나면 안타까움이 커지는 걸까요?

감옥에서 풀려난 날 쓴 일기,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쓴 일기, 아들이 죽은 날 쓴 일기에 드러난 그의 애절한 마음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순신에 대한 우리의 편견 때문일까요? 이순신을 수식하는 영웅다움이 커지는 만큼 이순신을 올바로 보는 정확한 시각은 가려지는 것 같습니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이 맞서 싸워야 했던 내부의 적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한탄이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죽음에 짓누르는 슬픔을 이겨내야 했던 한 인간의 번민도 드러나 있습니다. 또 두려움에 떠는 참모들을 향해 호통을 쳐야 했던 막막한 사연도 있습니다. 내부의 적(부패와 타성과 관료주의와 두려움)에게 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던 진짜 이순신이 그의 일기 속에 있습니다. 한때 독재 권력의 이익을 위해서나 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이용당하기도 했던 이순신 장군, 그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까?

이수봉 학림논술연구소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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