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아이에겐 ‘집같은 도서관’, 어른에겐 ‘마을의 사랑방’

  • 입력 2007년 11월 13일 07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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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9시 충북 보은군 속리산 자락에 위치한 수정초등학교 2층 도서관. 어둠이 깔린 주변과 달리 환하게 불빛을 밝힌 가운데 20여 명의 학생이 책을 읽고 있다.

4, 5년 전 이 시간에는 숙직 직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2004년 11월 ‘밤에도 열리는 학교’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이 학교 재학생 80여 명은 이제 주말이나 휴일에도 으레 일찌감치 일어나 학교에 온다. 이들에게는 ‘학교=집’이다.

수정초교에 ‘밤에도 열리는 학교’ 프로그램이 생기기 전,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동네가 국립공원 지역이라 학부모 대부분은 식당이나 숙박시설, 유흥주점 등을 운영했고, 밤늦게까지 일하다 보니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 학원도 먼 곳에 있어 갈 수가 없다 보니 아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돌아다니기 일쑤이고 일손이 부족할 때면 술심부름을 하는 것도 예사였다. 부모들은 안타까웠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2003년 3월 조철호(57) 교장이 부임했다. 학교 실태를 파악한 그는 기가 막혔다. 아이들을 책임져야 할 학교가 제 역할을 못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조 교장은 교사들과 논의한 끝에 도서관을 마련해 밤늦게까지 열기로 했다. 도서관이 항상 개방되면 학생들이 방과 후와 오후 늦게까지 학교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 학교의 야간 개방은 관리에 어려움이 많아 대다수 학교가 꺼리지만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조 교장은 8개월여 동안 충북도 내 초등학교는 물론 제주에서 열린 도서관 대회에도 참석해 자료를 수집했다. 이를 바탕으로 공사 견적서를 내고 교육인적자원부에서 3500만 원의 예산도 지원받았다.

2004년 11월 8일 드디어 도서관과 함께 ‘밤에도 열리는 학교’가 문을 열었다. 도서관 책꽂이는 학생들 눈높이에 맞춰 설치하고 온돌방도 구석에 배치했다. 빔 프로젝터와 컴퓨터도 갖췄다. 아이들은 신이 났고 이날부터 학교가 집이 됐다.

5학년 신상인(12) 양은 “예전에는 수업이 끝나면 갈 곳이 없었는데 지금은 친구들과 도서관에 모여 책을 읽는 게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이곳은 학부모와 지역주민에게도 개방된다.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와 독서와 인터넷을 즐길 수 있고 각종 회의와 토론회도 가능하다.

학부모 주기옥(39·여) 씨는 “처음엔 밤에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모아놓는 정도로 알았는데 교육 프로그램이 매우 잘 운영돼 놀랐다”며 “도시지역 학교 부럽지 않은 시설과 선생님들의 열정에 학부모 모두 안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단순히 아이들끼리 책만 읽게 놔두지 않는다. 요일마다 다양한 ‘수업교실’이 기다리고 있다.

제2외국어(중국어 일본어) 교실, 원어민과 함께하는 영어교실, 영화와 음악감상 등의 문화교실, 한자교실, 속리산 동요교실 등이 요일마다 진행된다. 강사진도 교사들은 물론 대학교수, 원어민 강사, 대학생 봉사자 등으로 듬직하다.

도서관과 교실에서 학부모와 학생이 먹고 자며 책을 읽는 독서캠프도 열리며, 전교생이 서점에 책을 사러 가는 ‘책을 찾아 떠나는 즐거운 여행’이라는 프로그램도 봄, 가을에 진행된다.

도서관 이외에 도시 학교 못지않은 시설을 갖춘 것도 이 학교의 자랑거리. 각 교실에는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TV가 설치돼 있어 멀티미디어 학습이 가능하다. 양호실에는 최신식 치과 진료시설을 갖췄으며 비만관리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운동장에는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정자형 야외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밤에도 열리는 학교’는 행정자치부 고객만족 우수 사례로 뽑혔고, 올해는 교육부에서 ‘방과 후 학교’ 시범 학교로 선정됐다. 대학교수 등 교육 전문가들이 전국에서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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