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하이킥]“학원 안 다녀도 논술 감 잡혀요”

  • 입력 2007년 10월 22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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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2시, 부산 금정구 서동 서명초등학교. 방과 후 학교 ‘독서논술’ 수업을 듣기 위해 5, 6학년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수업 정원은 18명인데 자리에 앉은 학생은 22명이다.

“정원이 차서 못 듣게 된 아이들이 청강을 하는 거죠.”

지도를 맡은 오현희(33) 교사가 웃으며 말했다. 이 학교의 방과 후 학교 독서논술 수업은 무료. 그래서 이렇게 ‘비공식적’으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독서논술 수업뿐 아니라, 올해 9월 시작한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 27개 가운데 17개가 무료다. 그래서 저소득층 자녀도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다.

교사 7명이 무보수 강의에 나섰고, 외부강사 10명이 또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부산시교육청은 지난해 10월 전국 최초로 방과 후 학교 지원센터를 설치하면서 9000여 명에 달하는 강사 풀을 확보했고 이들을 학교와 연결해 주고 있다.

독서논술 수업에는 부산시교육청과 대학교수, 고등학교 교사, 초등학교 교사 등 논술 전문가들이 개발한 방과 후 수업용 독서논술 전문 교재가 쓰인다. 이 교재는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초등생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른 뒤 토론거리와 퀴즈를 덧붙여 만들어졌다. 교재 개발에 참여한 오 교사는 이번 학기부터 주 2회에 걸쳐 이 교재로 가르치고 있다.

이날 수업은 동화 ‘우동 한 그릇’을 읽고 등장인물의 행동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었다. ‘우동 한 그릇’은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해서 나눠먹는 가난한 어머니와 두 아들을 위해 우동 집 주인이 남몰래 우동을 후하게 주었다는 내용. 결국 주인의 행동에 감동한 아이들은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한 뒤 다시 가게를 찾아온다.

오 교사와 학생들의 문답이 이어졌다.

“여러분이 만약 주인이라면 어떻게 했겠어요?”(오 교사)

“저라면 우동을 더 주지 않았을 거예요. 실제 세상은 냉정한 곳인데 가게 주인이 그렇게 무조건 퍼주면 이 아이들이 자라서 냉정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어요?”(김시우 양)

“우동 집에 온 다른 손님들의 처지에서 한번 생각해 볼까요?”(오 교사)

“똑같은 돈을 냈는데 사람에 따라 양이 많고 적은 건 불공평해요.”(김시현 양)

이어 학생들은 등장인물 중 한 명을 선택한 뒤 그 사람을 나름의 논리로 비판했다. 그러고 나서는 스스로 논제를 정해 30분 동안 논술문을 썼다. 6학년 손원애 양이 쓴 글의 주제는 ‘주인 아저씨의 행동은 아이들을 위한 배려에서 시작되었지만 아이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을까’였다.

오 교사는 학생들이 쓴 글을 살피며 흥미로운 내용은 큰소리로 읽어 줬다. 초등학생이 처음부터 자기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쓰기는 어려운 만큼, 남의 글을 듣고 거기에 자신의 창의적인 생각을 보태어 다시 제 글을 쓰는 연습을 시킨다.

수업을 시작할 때는 신문 기사 복사본을 나눠 주고 논술문을 쓰게 한다. ‘어린이들의 휴대전화 사용’ ‘사람 같은 로봇이 만들어진다면?’ 등과 관련된 기사를 찾아 나눠 준 뒤, 기사의 주제를 요약하고, 토론을 통해 문제 해결 방안을 찾고, 찬반 의견을 펼친 다음, 마지막으로 논술문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보통 ‘독서논술’을 하라고 하면 독후감을 쓸 때가 많다. 신문논술을 병행해야만 감상이 아니라 비판을 하는 ‘진짜 논술문’을 쓸 수 있다는 게 오 교사의 생각이다.

토론 시간에 한마디도 안 하던 학생들의 ‘입이 뚫리는’ 데는 보통 한 달. 남의 글을 대충 흉내 내서 쓰는 데는 두 달이 걸린다. 자기 생각을 찬찬히 글로 옮기는 작업 속에서 폭력적인 성격이나 욕하는 습관도 많이 고쳐진다.

이 학교는 전교생 500여 명 가운데 493명이 방과 후 수업을 들어 참여율이 92%에 이른다.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수업을 듣는 학생도 많다. 2년째 독서논술 수업을 듣고 있는 6학년 오승현(12) 양이 그런 경우. 오 양은 지난해부터 중학교 진학 후를 대비하기 위해 이 수업을 들어 왔다. 오 양은 원고지 10장가량의 글을 1시간 안에 써낸다. 지난해 부산 동래교육청이 주관한 논술문 쓰기 대회에서 2등을 했다.

“글의 핵심 주제를 요약하는 습관을 기르고 글의 다양한 형식을 배우니까 서술형 문제를 봐도 겁이 안 나요. 책도 예전보다 매주 한두 권은 더 읽게 됐고요.” 오 양은 글뿐만 아니라 말솜씨도 똑 부러졌다.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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