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만든 그늘?… 온 나라가 ‘신정아 홍역’

  • 입력 2007년 9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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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의 잔다르크’를 꿈꾸며 스스로를 ‘신다르크’라고 불렀던 신정아(35·여) 씨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학력 위조로 시작된 신 씨 파문이 학계와 문화계를 넘어 정관계를 뒤흔드는 대규모 스캔들로 비화되면서 시민들의 관심이 온통 신 씨에게 쏠리는 등 ‘신정아 신드롬’이 일고 있다. 신 씨를 바라보는 시각은 성별과 나이에 따라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신 씨 파문이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제2의 황우석 사태’로까지 불리고 있다.》

▽연예인보다 더 유명한 그녀=신 씨를 둘러싼 일거수일투족은 곧바로 화제가 되고 있다.

변 전 실장이 머물렀다는 ‘서머셋 팰리스 서울 레지던스’의 관리회사인 A사는 언론 보도 이후 레지던스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며 싫지 않은 표정이다. 신 씨가 머물렀던 오피스텔인 ‘경희궁의 아침’도 비슷한 상황이다.

변 전 실장이 신 씨에게 선물했다는 목걸이의 가격은 얼마이고, 모양은 어떤 것인지를 놓고 누리꾼들은 퍼즐게임을 하고 있다.

신 씨가 7월 중순 미국으로 도피하면서 입었던 티셔츠와 가방은 백화점에서 물량이 부족해 팔지 못할 정도. “변 전 실장 정도가 배후면 수없이 많다”는 그의 말은 유행어가 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신정아라는 단어만 나오면 곧바로 클릭 순위 상위권으로 올라선다. 신 씨의 나체 사진을 게재한 모 일간지의 인터넷 사이트는 접속 폭주로 이틀째 다운된 상태다. 신 씨에게 편지 보내기, 지도층 반성하기 등의 코너로 꾸며진 ‘신정아 위로란’이라는 팬 카페까지 등장했다.

신 씨와 변 전 실장의 부적절한 관계가 삭제된 e메일을 통해 드러나자 ‘메일 복구’ 방법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져 각 포털 사이트에선 ‘메일 복구’가 상위권 검색어에 오르고 있다.

▽한국판 팜 파탈(위험한 여성)=누리꾼들은 신 씨와 변 전 실장의 부적절한 관계를 언급하면서 신 씨를 한국의 팜 파탈로 묘사하고 있다.

일부 가정에선 부인이 “당신은 괜찮겠지”라며 남편에게 다짐을 받으려 하기도 한다.

주부 김종옥(48·여) 씨는 “사회 고위층까지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설마 내 남편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불안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중년 남성들 사이에선 ‘개인적으론 변 전 실장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는 식의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한 50대 기업가는 “권력, 명예, 돈을 모두 성취한 중장년 남자가 인생에서 찾을 수 있는 만족은 성적인 것밖에 없다”며 “지적이고 성적 매력을 갖춘 스무 살 정도 어린 여자라면 설사 가짜라도 인생을 걸어 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또 ‘예술 콤플렉스’가 있는 한국의 중장년층에 신 씨 같은 젊은 여성 예술인은 오랫동안 품어 온 ‘판타지’에 부합하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있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신 씨는 나르시스틱(자기애성) 인격장애가 의심된다”며 “이런 경우 끊임없이 주위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자기과시와 유혹적 행태를 보여 중장년 남성이 오히려 쉽게 그 여성에게 매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정아는 우리 시대가 낳은 ‘괴물?’=고려대 심리학과 안창일 교수는 “미국에선 흑인들이 오히려 굉장히 좋은 차를 몰고 다닌다”며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신 씨가 자신의 열등감을 만회하기 위해 ‘예일대’라는 학력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취업 준비생인 김혜미(25·여) 씨는 “‘여자라서 출세하기 쉽다’던 신 씨의 말은 뒤집어 보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여자가 출세하는 게 여전히 어렵다는 방증”이라며 “신정아는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 낸 괴물”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을 하는 신모(38) 씨는 “젊은 여성 가운데는 신정아를 소위 ‘된장녀’의 성공모델로 보는 시각도 있더라”며 “하지만 신 씨 사건을 외형 지상주의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사원 박재명(28) 씨는 “옷차림부터 인맥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전략적이었던 신 씨를 출세지향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사실 사회 트렌드를 잘 읽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현택수 교수는 “독립적이어야 할 학계와 문화계가 권력의 실세에 의해 흔들렸다는 점은 한국 사회의 후진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신정아 후폭풍을 맞은 미술계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한 미술계 인사는 “미술작품 구입의 큰손이었던 정부가 이제 그림 하나 사주겠느냐”며 “신 씨의 누드 사진까지 공개됐으니 국민이 미술계 사람들을 어떻게 보겠느냐”고 한탄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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