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성분처방’ 싸고 의협-정부 또 충돌

  • 입력 2007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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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9월부터 의약품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을 예정대로 실시하기로 함에 따라 의료계가 집단 휴진과 파업 불사를 선언하는 등 의정(醫政)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왜 실시하나=성분명 처방이란 의사가 처방전을 쓸 때 약 이름 대신 성분명만 적어 환자와 약사가 같은 성분으로 만든 약을 고르도록 하는 제도다. 성분명 처방은 현재 권고사항이지만 이를 따르는 의사는 거의 없다.

복지부는 유시민 전 장관 재임 때인 5월 말 이 제도의 시범사업을 결정했다. 당시 복지부는 “9월부터 국립의료원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높은 20개 성분, 34개 품목을 대상으로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가 이 제도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건강보험(건보) 재정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건강보험에서 부담한 약값이 2005년 한 해에 7조 원 정도로 전체 건강보험 지출액의 30%를 차지한다. 성분명 처방을 활성화하면 오리지널 신약 대신 20% 이상 값이 싼 복제약(카피약)의 사용이 늘어 약제비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의협 “약효 동등성 입증 안 돼”=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건보 재정 절감을 명목으로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정부가 시범사업을 강행할 경우 집단휴진과 파업 등으로 인해 제2의 의약분업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주수호 의협 회장은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복제약의 약효가 오리지널 신약의 80∼120% 범위에 들어가는 ‘생물학적 동등성(생동성)’이 입증돼야 성분명 처방이 가능하다”며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조사한 결과 115개 복제약의 생동성 시험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런 상태에서 시범사업을 강행하는 것은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주 회장은 “현재 국립의료원 앞에서 시범사업을 반대하는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31일 오후 대규모 집단 휴진을 하고, 비상총회에서 파업을 검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영찬 복지부 보건의료정책본부장은 “제도의 장단점을 평가하기 위해 공공의료기관에서 일부 의약품에 한해 시범사업을 하는 것도 반대하면 정부가 어떻게 정책을 세울 수 있겠느냐”면서 “늦어도 9월 중순에는 시범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의사 기득권 뺏길 우려”=성분명 처방이 실시되면 약 선택권이 의사에서 약사로 상당부분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의사들이 약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기면 각종 기득권도 빼앗기기 때문에 성분명 처방을 반대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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